일제하 조선 독립과 중국 혁명을 오가며 싸운 국제주의 사회주의자, 《아리랑》의 주인공
“나는 죽어서도 조선의 독립과 내가 평생 믿어온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소.” — 옌안에서 님 웨일즈에게 남긴 말
평북 용천 출신. 1919년 3·1운동 참가 후 일본·중국으로 건너가 1922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황포군관학교와 중산대학에서 수학하고 1927년 광저우 봉기에 홍군 측으로 참전했으며, 1936년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했다. 1937년 옌안에서 미국 언론인 님 웨일즈와 22차례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아리랑》(1941)은 조선 독립운동사의 생생한 증언으로 남았다. 1938년 캉성의 보안기관에 의해 '트로츠키스트·일본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었고, 1983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193·1운동 참가, 일본 경찰에 3일간 구금
- 1921일본 도쿄 유학 후 중국으로 이동
- 1922중국 공산당 입당
- 1923공산청년동맹 가입, 잡지 《혁명》 간행
- 1925–1927황포군관학교·중산대학 수학, 광저우 봉기 참전
- 1936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 창설,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출
- 1937옌안 항일군정대학 강사, 님 웨일즈와 인터뷰
- 1938캉성 보안기관에 체포, 간첩 누명으로 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