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트니차』를 창간하고 러시아 첫 여성의 날을 조직한 볼셰비키 여성 운동의 설계자
1914년 2월, 『라보트니차』 창간호 발행 전날 경찰이 편집실을 급습해 사모일로바를 포함한 편집진 전원이 체포되었다. 허가는 함정이었다. 그러나 회의에 늦은 안나 옐리자로바의 손으로 국제여성의날인 2월 23일 첫 호가 나왔다.
이르쿠츠크 사제의 딸로, 페테르부르크 베스투제프 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02년 파리에서 레닌을 만나 『이스크라』에 합류한 뒤 10년간 지하 선전가로 활동하며 세 차례 체포되었다. 1912년 『프라우다』 편집서기로 일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편지에 주목, 1913년 러시아 최초의 국제여성의날을 조직했다. 1914년 이네사 아르만트와 『라보트니차』를 창간했고, 1917년 2월 혁명 후 복간했다. 우크라이나 CP(b)U 여성부장, 『콤무니스트카』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볼가 선전선 정치부장으로 일하다 1921년 아스트라한에서 콜레라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896베스투제프 여성 고등과정 입학, 철학 수학
- 1897–1901학생운동 참여, 1901년 첫 체포 및 퇴학 처분
- 1902–03파리 러시아 사회과학 고등학교 수학, 레닌과 만나 『이스크라』 합류
- 1903–12RSDLP 입당, 지하 선전 활동 — 트베리·오데사·로스토프·루간스크에서 세 차례 체포
- 1907런던 RSDLP 제5차 대회 대의원
- 1912–14『프라우다』 편집서기
- 1913.02러시아 최초의 국제여성의날 집회 조직, 수백 명의 여성 노동자 동원
- 1914.02이네사 아르만트와 『라보트니차』 창간 — 발간 직전 체포
- 19172월 혁명 후 『라보트니차』 복간, 11월 제1차 여성노동자회의 조직
- 1918.01제1차 전러시아 여성노동자대회 공동 조직
- 1919–20우크라이나 CP(b)U 여성부장, 제8차 당대회 대의원
- 1920–21『콤무니스트카』 편집위원, 볼가 선전선 「붉은 별」 정치부장
관련 역사 사건
『라보트니차』와 여성 노동자 조직화
사모일로바는 『프라우다』 편집서기로 일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이 보내온 편지 더미를 접했다. 공장의 열악한 노동 조건, 가정 내 이중 부담, 정치적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삶. 이 편지들은 그녀에게 여성 노동자만을 위한 정기 간행물의 필요성을 확신시켰다. 1914년 2월, 이네사 아르만트·나데즈다 크룹스카야·안나 옐리자로바 등과 함께 『라보트니차』 창간호를 준비했지만, 시 당국의 출판 허가는 도리어 함정이었다. 발간 직전 경찰이 편집실을 급습해 사모일로바를 포함한 편집진 전원을 체포했고, 회의에 늦어 체포를 면한 옐리자로바의 손으로 첫 호는 1914년 2월 23일(3월 8일) 빛을 보았다. 사모일로바가 구상한 『라보트니차』는 단순한 선전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노동자 여성들이 스스로 글을 쓰고,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며, 집단적 행동의 주체로 서도록 이끄는 것을 편집의 원칙으로 삼았다. '여성 문제'를 계급 문제와 분리하는 부르주아 페미니즘과는 철저히 선을 그었고, 여성 해방이 오직 노동계급 전체의 해방 투쟁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17년 2월 혁명 후 『라보트니차』는 복간되어 10월 혁명 직전까지 여성 노동자들을 볼셰비키 쪽으로 결집시키는 핵심 매체로 기능했으며, 그해 11월 사모일로바가 조직한 제1차 여성노동자회의와 1918년 1월의 제1차 전러시아 여성노동자대회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은 그녀에게 러시아 볼셰비키 여성 운동의 실천적·이론적 토대를 닦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