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루사코프는 아프가니스탄 개입 결정을 담은 정치국 문서에 서명했다. 그가 관장하던 '사회주의 국가' 범주 안에는 이제 군사적 현상 변경까지 포함되었다.
레닌그라드 공과대학을 졸업한 토목기술자 출신으로, 1930년대 육류·어류 가공공장 건설 현장에서 경력을 시작해 1950년 소련 수산공업장관까지 올랐다. 1957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시대 간부 숙청 때 폴란드 대사관 참사관으로 밀려났다가, 1964년 브레즈네프 시대에 중앙위 기구로 복귀해 사회주의 국가 공산당·노동자당 연락부를 이끌었다. 1977년 중앙위 서기로 겸직하면서 9년간 바르샤바 조약 동맹국과 몽골·베트남·쿠바 등 사회주의권 집권당과의 관계를 총괄했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 개입 결정에도 참여했다. 1986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직후 '구시대 인물'로 퇴장했다.
경력 연표
- 1930–1939육류·어류 가공공장 건설 현장의 기술자·현장소장
- 1939–1946수산공업인민위원부에서 건설·기술 간부로 승진
- 1946–1957수산공업 차관·제1차관·장관(1950–1952) 역임
- 1958–1960주폴란드 소련 대사관 참사관
- 1962–1963주몽골 소련 대사
- 1964–1972중앙위 사회주의국가 공산당·노동자당 연락부 차장 → 제1차장 → 부장
- 1972–1977브레즈네프 중앙위 서기장 보좌관
- 1977–1986중앙위 서기 겸 사회주의국가 공산당 연락부장
사회주의권 당 대 당 외교
루사코프가 1964년부터 1986년까지 22년간 몸담은 중앙위 사회주의국가 공산당·노동자당 연락부는 소련 외무부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또 하나의 외교 채널이었다. 이 부서는 바르샤바 조약 동맹국은 물론 몽골·베트남·쿠바·라오스 등 집권 공산당이 있는 모든 국가와의 당 대 당 관계를 총괄했으며, 정상회담 준비, 이념 노선 조율, 경제협력 조정, 군사협력 의제까지 폭넓게 관여했다. 루사코프는 1968년 부장이 된 직후 프라하의 봄 진압을 둘러싼 동맹국 내 설득 작업을 수행했고, 1977년 중앙위 서기로 승격되면서 이 업무는 정치국 직속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1980~81년 폴란드 자유노조(연대) 위기 당시에는 브레즈네프와 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지도부 사이의 핵심 소통 채널로 기능하며 소련의 군사적 개입 압력과 동맹국 자율성 사이의 긴장을 관리했다. 그의 부서는 정책을 직접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국의 결정이 집행되는 통로였기에 실무적 영향력은 막대했다. 고르바초프는 집권 직후인 1986년 2월 루사코프를 경질하고 이 자리에 바딤 메드베데프를 앉혀 사회주의권 외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