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서기에서 피고석으로 간 초기 볼셰비키
1938년 제3차 모스크바 재판 첫날, 크레스틴스키는 피고석에서 일어나 '나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며, 반소비에트 블록의 구성원도 아니었다'고 선언했다. 대숙청기 세 재판 전체에서 법정 자백을 거부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차르 시절 변호사 출신의 볼셰비키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혁명을 이끌고 최초의 정치국원이 되었다. 스베르들로프 사후 1919년부터 2년간 책임서기로서 당을 이끌었으나, 노동조합 논쟁에서 트로츠키를 지지하며 레닌과 충돌해 실각했다. 이후 소련 최대의 외교무대인 주독 전권대표로 9년간 활약했고, 대숙청기 모스크바 재판에서 유일하게 법정 자백을 거부한 피고로 기록되었다.
경력 연표
- 1918–22재무인민위원
- 1919–21책임서기, 정치국원
- 1938제3차 모스크바 재판 후 처형
관련 역사 사건
제3차 모스크바 재판의 이변
1938년 3월, 크레스틴스키는 '반소비에트 우익-트로츠키 블록' 사건의 피고 21인 중 한 명으로 제3차 모스크바 재판에 섰다. 기소 내용은 트로츠키 및 독일 정보기관과의 연계, 당 지도부에 대한 테러 음모 등이었다. 첫날 법정에서 크레스틴스키는 유일하게 사전 자백을 전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는 '나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며, 반소비에트 블록의 구성원도 아니었다'고 선언했다. 법정은 당황했고, 그날 오후 크레스틴스키는 '추가 수사'를 이유로 법정에서 물러났다. 다음 날 그가 다시 법정에 섰을 때는 전날의 부인에 대해 사과하고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 하룻밤 사이에 어떤 '특별 조치'가 가해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왼쪽 어깨가 탈구된 상태였다는 증언이 있다. 3월 13일 사형 선고, 이틀 뒤 총살되었다. 대숙청기의 세 차례 모스크바 재판에서 피고가 법정에서 자백을 거부한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