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르 라슬로

Ritter László
헝가리 헝가리인 1977–

냉전 군사사의 기록보관소 연구자

리테르는 기록보관소 자료를 들어, 헝가리군이 남부 방어선을 쌓은 것은 티토 침공이 아니라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들어오는 서방의 공격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반박했다.

리테르 라슬로는 헝가리의 현대사 연구자로, 정보기관·국가안보와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관계를 주로 연구했다. 그는 티토-스탈린 분열 뒤 소련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는 키라이 벨러의 회고를 헝가리와 국제 기록보관소 자료로 재검토했다. 그의 연구는 당시 헝가리군의 남부 방어와 전면전 대비를 침공 준비와 구별하며, 스탈린의 군사적 의도를 둘러싼 사료적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소련 블록과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이의 비밀전쟁 연구

리테르의 연구 중 별도의 축을 이루는 것은 소련 블록과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이에서 벌어진 첩보전이다. 그는 1948년부터 1953년까지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에 비밀전쟁이 벌어졌으며 양국 정보기관이 충돌했다고 서술한다. 그가 보기에 이 갈등이 냉전사의 별도 장을 이루는 이유는, 똑같이 스탈린주의 체제였던 두 나라의 국가안전기관이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다. 헝가리 쪽에서는 세 기관(국가보위청 소속 둘과 군사정보 하나)이 정보활동을 나눠 맡은 반면 유고슬라비아에는 중앙집권화된 단일 조직이 있었고, 헝가리에는 소련 고문들이 상주했다. 리테르에 따르면 이는 두 측면에서 불리했다. 부다페스트가 중요한 사안을 모두 모스크바로 넘긴 반면 소련 측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헝가리는 군사정보와 국가안보정보 사이의 소련 내부 갈등까지 물려받아 정보 효율이 떨어졌다.

초기 조치들은 오늘날 눈으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실질적 타격이었다. 양측은 먼저 상대를 실추시키는 선전물을 불법 유포했는데, 헝가리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티토 측에 보낸 결별 서한을 유고슬라비아 노동조합 간부 약 2천 명에게 우편으로 보냈고, 1950년 5월 빈 국제박람회에서는 국가보위청 요원들이 유고슬라비아의 공식 안내 책자를 베오그라드 지도부에 대한 (모스크바의) 비난이 담긴 책자로 바꿔치기했다. 리테르의 기록보관소 연구는 외교 각서와 언론에 등장한 상호 비난, 즉 납치와 암살 주장이 놀랍게도 대부분 선전물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음을 밝혀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유고슬라비아 정보기관(UDB)의 3인조 요원팀이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 티토 반대 유고슬라비아 이민 조직의 고위 지도자 두샨 비도비치를 납치한 일이었다. 이들은 위조한 국가보위청 서류로 그를 함정에 빠뜨린 뒤 유고슬라비아로 끌고 갔다. 이후 국가보위청은 비도비치의 흔적 없는 실종을 빌미로 다른 티토 반대 지도자 일곱 명을 구금했고, 1952년 8월에는 이민 조직의 최고 인물 보리스 베르스토브셰크를 납치하려 다시 투입된 일당을 국가보위청이 붙잡았다. 리테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거의 9천 명의 기관 인력이 열흘 동안 이들을 추적했고, 이 사건은 국가보위청의 가장 대표적인 실패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리테르는 비밀전쟁의 희생자 수를 정확히 확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 자신도 한 곳에서는 '백 명이 넘는 사망자', 다른 곳에서는 '수백 명의 사망자'를 말해 이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입증된 암살 사건은 한 건으로, 무르스카소보타 출신의 UDB 요원이 자신을 알아본 국가보위청 정보원을 사살한 경우이다. 사망자만이 아니라 희생자로 본다면 간접적·직접적 피해자가 수십만에 이를 수 있었다. 리테르에 따르면 정보전의 최대 패배자는 국경 지역에서 모집된 요원들 자신이었고, 유고슬라비아의 헝가리인과 헝가리의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 같은 소수민족 공동체도 명백한 피해자였다. 편집증적 조치는 국경지대 주민의 삶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옥죄었으며(당시 헝가리 쪽 구역에 30만 명이 살았다), 양쪽에서 수천 명이 '티토주의자'와 '코민포름주의자'라는 이름으로 견해와 출신 때문에, 또는 날조된 혐의로 수용되거나 투옥되었다.

이 주제는 그의 지속적인 연구 영역과 맞닿아 있다. 그는 1920년부터 1990년까지 헝가리의 정보와 국가안보, 같은 기간의 헝가리 군대와 군사정책, 그리고 1945년부터 1991년까지의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관계를 연구 주제로 삼았다. 그는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소련 블록과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이의 비밀전쟁을 여러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했고, 헝가리어 평론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의 비밀전쟁: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 정보기관 1948-1953」은 《히스토리아》 2010년 1-2월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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