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가톱스키

Лев Маркович Гатовский
소련 러시아 1903–1997 ○ 자연사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을 학문으로 정초한 편집자

1949년 여름, 보즈네센스키의 『소련 전시경제』를 '중대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저작'이라 평했다는 이유로 당 중앙위 결정에 따라 《볼셰비키》 잡지에서 해임되었다.

소련의 경제학자,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보프로시 예코노미키》 주필(1957–1965)로서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을 학문으로 정초했다. 1929년 곡물 시장 연구로 집단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29년 곡물 시장 연구와 집단화의 경제적 논거

1927년 말 전쟁 공포가 촉발한 이른바 '곡물 파업'으로 농산물 조달이 급감하자, 25세의 경제학자 가톱스키는 시장 데이터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1929년 발표된 이 연구는 자유시장 가격 체계가 소비에트 경제 전체를 위협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1927년 12월부터 1년 사이 곡물 자유시장 가격은 두 배로 뛰었고 사료 가격도 1.5배 상승했다. 국가가 밀가루를 통제 가격으로 공급하는 사이, 농민들이 시장에서 완제품인 빵보다 비싼 값에 밀가루를 사들이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농민들은 값싼 국영 빵을 사서 가축 사료로 돌렸고, 사료값 상승은 가축 도태로 이어졌다. 젖소와 말 가격은 최대 27% 하락했고 우유 대비 사료 가격비는 급락했다.

기술작물의 경쟁력도 무너졌다. 스몰렌스크 지역에서 호밀 대비 아마 가격은 1년 만에 2.8배 악화되었고, 비흑토지대의 주요 상품인 우유와 사탕무, 아마 모두 곡물에 비해 수익성이 급감했다. 국가는 수매가를 계획보다 대폭 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적 농산물 가격 상승은 도시 전체 생계비를 끌어올렸고, 45개 도시에서 농산물 유통 마진은 1년 만에 28.6%에서 84%로 뛰었다.

가톱스키는 부문별 상품화율에서 결정적 논거를 끌어냈다. 그의 집계에 따르면 쿨라크는 농촌 인구의 5%로 곡물 총생산의 13%를 차지하면서 상품화율 20%를 기록한 반면, 국영농장과 콜호스로 이루어진 사회주의 부문은 생산 점유율이 1.7%에 불과했지만 상품화율은 47.2%로 가장 높았다. 도시에 곡물을 실제로 공급하는 능력에서 사회주의 부문이 앞선다는 이 대비는 집단화를 통한 전환 없이는 조달 위기를 풀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그의 결론은 냉엄했다. "자유시장의 가격 압력은 극히 크며, 추가 상승은 전체 국민경제 체계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연구는 네프의 시장 메커니즘으로는 농업과 공업의 균형을 회복할 수 없다는 당내 논의에 실증적 무기를 제공했고, 전면 집단화로의 전환에 결정적인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