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계획을 수학으로 최적화하려 한 노벨상 수상자
1941년 12월, 레닌그라드 포위전 속에서 칸토로비치는 라도가 호수 얼음 위를 직접 걸으며 얼음 두께와 기온에 따른 차량 간 최적 거리를 계산했다. '생명의 길'이었다.
소련 유일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1975). 1939년 합판 공장의 배분 문제를 풀며 선형계획법의 기초를 정립했고, 최적해에서 도출되는 '해소 승수'가 계획경제 내 객관적 가격 신호로 기능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22세에 레닌그라드 대학 교수, 1935년 무방어로 물리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그림자 가격 이론은 중앙계획 아래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위한 이론적 토대였으나, 마르크스 노동가치론과 충돌하여 소련 경제관료에게 오래 배척당했다. 1960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수리경제연구소를 창설하며 계획경제의 수학적 합리화를 평생 과제로 삼았다.
경력 연표
- 1930–1939레닌그라드 산업건설기술자 연구소 교수
- 1934–1960레닌그라드 대학 교수 (22세에 임용)
- 1939–1948군사공학기술대학 수학 주임
- 1948–1960레닌그라드 대학 수학·역학 연구소 부서장
- 1960–1971소련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 수리경제 부문 창설·지도
- 1971–1976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 국민경제운영연구소
- 1976–1986전연방 시스템연구소 (ВНИИСИ)
관련 역사 사건
합판 공장에서 탄생한 선형계획법 (1939)
1938년, 레닌그라드 대학의 26세 수학 교수 칸토로비치는 합판 트러스트로부터 예상치 못한 의뢰를 받았다. 여덟 대의 루실기(베니어판 peeling 기계)로 다섯 종류의 원자재를 처리할 때, 생산량을 최대화하려면 각 기계에 어떤 원자재를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실무자들은 경험에 의존해 배분했지만, 칸토로비치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수학 문제임을 직감했다.
그가 정식화한 문제는 수많은 변수로 구성된 선형 함수(생산량)를, 선형 등식과 부등식 형태의 제약 조건 아래에서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알려진 해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칸토로비치는 라그랑주의 미정승수법을 변형하여 해를 구했고, 이 과정에서 최적해에서 각 제약 조건에 대응하는 '해소 승수'(разрешающие множители)가 자원의 객관적 가치, 즉 최적 가격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중요한 통찰은 이것이 단일 공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1939년 출간된 소책자 『생산 조직 및 계획의 수학적 방법』에서 그는 이 수학적 방법이 '경제적 지표의 재구성, 작업 할당, 장비의 합리적 사용, 절단 문제, 복합 원자재의 최적 사용, 건설 계획, 수송 계획, 기업 입지 선정' 등 실로 방대한 범위의 경제 문제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선형계획법이 탄생했으며, 조지 단치크가 서방에서 독자적으로 심플렉스법을 발표하기 8년 앞선 성취였다.
그러나 1939년 당시 이 작업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소련 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 노동가치론과 충돌한다고 보았고, 수학자들에게는 '응용 문제'에 불과했다. 칸토로비치의 이론이 국제적으로 재발견된 것은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