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전가에서 시작해 소련을 서명으로 끝낸 우크라이나 초대 대통령
벨로베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은 멀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1958년 입당해 30여 년간 우크라이나 공산당 선전·이념 부서를 오르내린 당료였으나, 1990년 최고소비에트 의장에 오르며 '민족공산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노보오가료보 협상에서는 연방이 아닌 연합(конфедерация)을 고수하며 신연방조약 서명을 9월로 미루었고, 1991년 8월 쿠데타 실패 후 8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선언을 주재했다. 그해 12월 1일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일주일 뒤 옐친·슈시케비치와 벨로베즈 협정에 서명하여 소련의 종말을 확정지었다. 대통령 재임 중 핵무기 포기와 경제 침체로 비판받았으나, 평화로운 정권 교체로 퇴진해 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경력 연표
- 1958–70정치경제학 교사에서 체르니우치 주당 선전선동 부장까지
- 1970–80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선전선동 부서에서 승진
- 1980–88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선전선동 부장
- 1988–89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이념 부장
- 1989–90.6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서기, 정치국원, 제2서기
- 1990.7–1991.8우크라이나 최고소비에트 의장; 독립선언 주재
- 1991.12–1994.7우크라이나 초대 대통령; 벨로베즈 협정 서명, 쿠치마에 패배
- 1994–2006인민대의원, SDPU(o) 원내대표
관련 역사 사건
- 1988–1991민족위기와 중앙권력의 붕괴우크라이나에 이중 질문을 추가연방 국민투표와 함께 '우크라이나가 주권국가선언에 기초하여 소비에트 주권국가연합의 일원이 되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별도 질문을 추가했고, 유권자 80.2%가 찬성했다.
- 1991노보오가료보 협상과 신연방조약우크라이나 대표우크라이나 최고회의 의장으로 10월 11일 국가평의회에서 12월 1일 국민투표 전까지 조약 협상 불참을 통보했고, 11월 8일엔 노보오가료보 과정을 '과거완료형'이라 선언했다. 벨로베즈 서명자.
- 19918월 쿠데타와 소련의 해체벨로베즈에서 소련을 서명으로 끝낸 우크라이나 대통령우크라이나의 92% 독립 찬성 직후 벨로베즈 협정에 서명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연방 구상을 거부하여 해체를 기정사실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