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체제의 정보 설계자
자먀틴은 카터 행정부를 향해 '미국은 세계 헌병 역할에 나서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하며, 하피줄라 아민이 CIA 요원이었다는 주장을 소련 고위 관리로서는 처음으로 공개 제기했다. — FRUS, 1980년 1월 28일
소련의 외교관이자 당 선전 책임자로, TASS 사무총장과 중앙위 국제정보부장을 거치며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의 해외 정보·선전 체계를 총괄했다. 브레즈네프 회고록 3부작의 집필진을 이끌어 레닌상을 수상했으며, 말년에는 주영 대사로 부임했다가 1991년 8월 쿠데타를 규탄하기를 거부하여 해임되었다. 냉전기 소련의 대외 이미지와 정보 통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경력 연표
- 1944–1946모스크바 항공대학·고등외교학교 졸업, 외무부 입부
- 1946–1962외무부에서 UN·IAEA 대표부 근무, IAEA 상임대표 역임
- 1962–1970외무부 공보국장, 대외 발표와 언론 브리핑 총괄
- 1970–1978TASS 사무총장, 소련 공식 통신사의 수장
- 1978–1986중앙위 국제정보부장, 당의 대외 선전·정보 활동 총괄
- 1978브레즈네프 회고록 3부작 집필진 지휘, 레닌상 수상
- 1986–1991주영 소련 대사, 8월 쿠데타 규탄 거부로 해임
관련 역사 사건
브레즈네프 회고록 3부작: '말라야 제믈랴' 프로젝트
1977년 브레즈네프가 툴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자먀틴에게 "말라야 제믈랴에 대해, 죽은 병사들에 대해 좀 써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즉시 "국민이 당신의 회고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거들었고, 미하일 수슬로프는 자먀틴을 불러 "정치국 위원들도 모르게, 당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여기라"고 지시했다. 당시 TASS 사무총장이었던 자먀틴은 저술팀을 비밀리에 구성했다: 『이즈베스티야』의 아르카디 사흐닌이 1차 초고를 썼으나 퇴짜를 맞았고, 명에세이스트 아나톨리 아그라놉스키가 재집필했으며, 『프라우다』의 알렉산드르 무르진이 『첫땅』(첼리나)을 담당했다. 자먀틴의 부하였던 비탈리 이그나텐코도 작업에 참여했다. 브레즈네프는 입원 중이던 크렘린 병원에서 원고를 받아 간간이 수정했다.
1978년 『신세계』(노비 미르)에 『말라야 제믈랴』(2월), 『부흥』(5월), 『첫땅』(11월)이 차례로 게재되었고, 각 권 1,500만 부가 발행되어 120개국 국립도서관에 배포되었다. 뱌체슬라프 티호노프가 중앙TV에서 낭독했고, 학교 교과과정에 편입되었다. 1978년 자먀틴은 이 작업으로 레닌상을 수상했다. 회고록은 브레즈네프가 노쇠하여 연설조차 어려워하던 시기에 나왔기에,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는 공공연한 조롱거리였다. 자먀틴 자신도 후일 "브레즈네프는 글을 쓸 줄 몰랐다"고 인정했다. 1987년 여름, 페레스트로이카 속에서 이 책들은 서점에서 철거되어 폐지로 처리되었다. 자먀틴은 사후 출간된 추가 장들의 유일본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2000년대에 출판사 바그리우스가 출간을 제안했을 때 동의했으나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