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우리의 붉은 은행가'라 부르고서 일주일 만에 내친 고스방크 총재
1936년 7월 14일, 스탈린의 집무실. 고스방크 총재 마랴신이 자신의 운명을 걱정하자 스탈린은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너는 반대파도 아니잖나. 우리의 붉은 은행가야. 뭐가 두렵나?" 일주일 뒤 그의 집무실은 봉인되었다.
모길료프의 법률고문 아들로 태어나 1915년 볼셰비키에 입당, 혁명기 모스크바 군관구 교육기관 정치위원을 시작으로 내전기 전러시아 총참모부에서 보편군사훈련 부서를 이끌었다. 1920년대 당 조직국과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보통계부를 거쳐 1927년 볼셰비키 전당 중앙위원회 조직배치부 부장에 올랐으며, 이 시기 니콜라이 예조프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1930년 적색교수양성소를 졸업하고 국가은행에 입행하여 1934년 4월부터 1936년 7월까지 고스방크 총재를 지내며 재정부인민위원과 노동국방평의회 위원을 겸임했다. 해임된 지 5개월 만에 체포되어 1938년 8월 총살되었으며, 한때 '료부시카'라 부르던 예조프가 직접 고문을 지시했다.
경력 연표
- 1917–1918모스크바 군관구 교육기관 정치위원
- 1918–1920전러시아 총참모부 프세보부치 부서장
- 1920–1921보로네시 시당위원장, 오룔 현당위원회 책임비서
- 1922–1923투르케스탄 ASSR 중앙경제회의 의장
- 1923–1924최고경제회의(ВСНХ) 중앙경제관리국 무역·금융정책 부장
- 1925–1927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정보통계부장, 중앙위원
- 1927–1928전연방 공산당 중앙위 조직배치부 부장
- 1928–1930적색교수양성소 수학
- 1934–1936국가은행 총재, 재정부인민위원, 노동국방평의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