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도시 봉기 노선 「리리싼 노선」으로 당을 이끌다 실각한 노동운동 지도자
1922년 안위안 탄광 파업을 조직한 중공 노동운동 지도자로, 1930년 3월부터 8월까지 당 중앙의 실권을 쥐었다.
후난 출신으로 프랑스 근공검학 시절 입당했고 1922년 안위안 탄광 파업, 1925년 5·30 운동의 조직자였다. 1928년 이후 당 중앙의 실권을 쥐고 1930년 혁명의 고조가 왔다며 창사·우한 등 대도시 공격을 명령했으나 실패했고, 코민테른의 비판으로 실각해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다. 15년 동안 소련에 머물며 소련인 아내를 맞았고 1946년 귀국해 노동부장을 지냈다. 문화대혁명 초기 박해 속에 1967년 자살했으며 1980년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이립삼
주요 활동과 소속
-
1921–1967
중국공산당대표
정치·당 지도- 정치국 상무위원·중앙 선전부장·비서장1928–1930
-
1922–1927
사회운동·조직
-
1932–1938
코민테른중공 코민테른 대표단원
외교·국제활동 -
1949–1954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노동부장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20–1921프랑스 근공검학, 화공 노동운동으로 추방됨
- 1922안위안 탄광 대파업 총지휘
- 19255·30 운동 상하이 총파업 총지휘
- 1927.08난창 봉기 혁명위원회 위원·정치보위 책임자
- 1928.10–1930중공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겸 선전부장, 실질적 지도자
- 1930.06–09중앙 비서장으로 도시 봉기 노선(리리싼 노선) 추진
- 1930.12코민테른에 소환되어 모스크바에서 자기비판
- 1932–1938중공 코민테른 대표단원, 적색노동조합인터내셔널 주재 중화전국총공회 대표
- 1938.02–1939.11소련 내무인민위원부에 체포되어 투옥
- 1946귀국, 군사조정부 동북 3인 소조 중공 수석대표
- 1949–1954노동부장, 중화전국총공회 부주석
- 1967.06.22문화대혁명의 박해 속에 사망, 1980년 복권
관련 역사 사건
- 1915–19215·4 운동과 중국공산당의 창당안위안 탄광 파업 총지휘안위안에 당 지부와 노동자 구락부를 세우고 1922년 9월 파업을 지휘해 승리했다.
- 1924–1927제1차 국공합작과 북벌, 1927년의 파국5·30 운동의 노동 지도자 · 난창 봉기 제안자상하이 총공회를 이끌었고 1927년 난창 봉기를 처음 제안했다.
- 1927–1936징강산에서 옌안까지: 소비에트 근거지와 대장정도시 봉기 노선 추진자1930년 도시 봉기를 추진하고 창사 공격을 명령했으나, 점령은 며칠 만에 끝났다.
- 1966–1976문화대혁명문화대혁명 초기 박해 피해자문화대혁명 초기에 박해를 받았다.
도시 봉기 전략과 창사의 점령
1929년 코민테른 극동국이 중국공산당을 소극적이라고 비판하자, 당 총서기 샹중파는 중국 혁명이 고조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리리싼은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가 도시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고 혁명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노선을 추진했다. 1930년 6월 당 중앙은 각 성에 행동위원회를 설치하고 10월 전면 봉기를 준비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한두 성의 봉기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7월 공산군은 후난성 창사를 점령했지만 국민당군이 며칠 만에 탈환했고, 다른 도시의 봉기도 진압되었다. 창사에서의 패배 뒤 당 활동의 중심은 마오쩌둥의 유격대 쪽으로 이동했다. 코민테른은 리싼을 책임자로 비판하고 모스크바로 소환했으며, 1931년 당 중앙의 권력 교체로 리싼은 지도부에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리싼과 노선에 반대한 노동운동가 허멍슝·뤄장룽 등 당원들도 우경주의자로 비판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