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싼

李立三
중국공산당 마르크스-레닌주의 중국 중국 1899.11.18.–1967.6.22. ✕ 실각 1930 · 자살

1930년 도시 봉기 노선 「리리싼 노선」으로 당을 이끌다 실각한 노동운동 지도자

1922년 안위안 탄광 파업을 조직한 중공 노동운동 지도자로, 1930년 3월부터 8월까지 당 중앙의 실권을 쥐었다.

후난 출신으로 프랑스 근공검학 시절 입당했고 1922년 안위안 탄광 파업, 1925년 5·30 운동의 조직자였다. 1928년 이후 당 중앙의 실권을 쥐고 1930년 혁명의 고조가 왔다며 창사·우한 등 대도시 공격을 명령했으나 실패했고, 코민테른의 비판으로 실각해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다. 15년 동안 소련에 머물며 소련인 아내를 맞았고 1946년 귀국해 노동부장을 지냈다. 문화대혁명 초기 박해 속에 1967년 자살했으며 1980년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이립삼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도시 봉기 전략과 창사의 점령

1929년 코민테른 극동국이 중국공산당을 소극적이라고 비판하자, 당 총서기 샹중파는 중국 혁명이 고조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리리싼은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가 도시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고 혁명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노선을 추진했다. 1930년 6월 당 중앙은 각 성에 행동위원회를 설치하고 10월 전면 봉기를 준비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한두 성의 봉기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7월 공산군은 후난성 창사를 점령했지만 국민당군이 며칠 만에 탈환했고, 다른 도시의 봉기도 진압되었다. 창사에서의 패배 뒤 당 활동의 중심은 마오쩌둥의 유격대 쪽으로 이동했다. 코민테른은 리싼을 책임자로 비판하고 모스크바로 소환했으며, 1931년 당 중앙의 권력 교체로 리싼은 지도부에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리싼과 노선에 반대한 노동운동가 허멍슝·뤄장룽 등 당원들도 우경주의자로 비판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