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여름, 예조프의 다차에서 동료 체키스트들에게 "일이 잘못되면 자살하겠다"고 말했고, 그해 11월 모스크바行 기차를 한 시간 앞두고 권총 자살로 그 말을 실행했다.
볼셰비키 체키스트. 예조프 측근으로 1936년 NKVD 인사국장이 되어 야고다 계열 14,000명을 숙청하고 부하린 재판을 주도했다. 레닌그라드 NKVD 국장이던 1938년 예조프 몰락 직후 자살했다.
경력 연표
- 1917크라스노야르스크 인쇄노조 위원장
- 1920–1921극동전선 군사위원·체카 수사관
- 1930중앙아시아 당국 분배부장
- 1931–1933볼셰비키 중앙위 간부분배부문 차장
- 1936–1937NKVD 인사국장
- 1937–1938GUGB 제4부(비밀정치부)장
- 1938레닌그라드 NKVD 국장
관련 역사 사건
대숙청와 레닌그라드 NKVD
1937년 5월 리트빈은 GUGB 제4부(비밀정치부)장에 임명되어 스탈린의 '처형 명단'에 서명하는 핵심 직책을 맡았다. 제4부는 '반소비에트 요소' 색출을 전담했으며, 그가 서명한 명단에는 수천 명의 당·군 간부가 포함되었다. NKVD 특별트로이카 위원으로서 재판 없는 처형 결정에도 직접 관여했다.
1938년 1월 레닌그라드 NKVD 국장으로 전보된 리트빈은 전임자 자콥스키가 시작한 대량 숙청을 한층 격화시켰다. 1938년 한 해 동안 레닌그라드에서만 20,769명이 총살되었다. 이 시기 레닌그라드 체키스트들 사이에서는 '자콥스키 때는 꽃이었고, 리트빈 때는 열매다'라는 암울한 농담이 돌았다. 1939년 1월 스탈린이 서명한 당 중앙위 서한은 리트빈을 자콥스키, 우스펜스키와 함께 '고문을 예외에서 상례로 만들고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적용한 자들'이라고 단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