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단 하나의 인간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이천 마디 말」로 저항한 체코의 작가
「지난 20년 동안 이 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인간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1967년 작가대회에서 선언한 바출리크 앞에서 당 대표단은 퇴장했고 청중은 긴 박수를 보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이자 공산당원이었다가 1967년 제4차 체코슬로바키아 작가대회에서 노보트니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연설로 당에서 축출되었다. 1968년 6월 대표작 「이천 마디 말」을 발표하여 시민의 자발적 행동과 개혁 심화를 촉구했고, 이는 프라하의 봄을 상징하는 문헌이 되었으나 소련의 개입 구실로도 이용되었다. 침공 이후 출판이 전면 금지되었으나, 지하 출판사 페틀리체를 설립하여 하벨·클리마 등 금지 작가들의 작품을 17년간 펴냈다. 1977년 헌장 77의 서명자로서 체제 비판을 이어갔고, 1989년 이후 『리도베 노비니』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매주 체코 사회를 논평하며 2015년까지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5–1967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당원
- 1959–1965체코슬로바키아 방송 청년 프로그램 편집자
- 1965–1969『리테라르니 노비니』(후에 『리테라르니 리스티』) 편집자
- 1967제4차 체코슬로바키아 작가대회 연설로 당에서 축출
- 1968「이천 마디 말」 선언문 작성 및 발표
- 1969–1989출판 금지, 지하 출판 활동
- 1973–1990사미즈다트 출판사 페틀리체 설립·운영
- 1977헌장 77 서명
관련 역사 사건
사미즈다트 출판과 헌장 77에 대한 비판
1969년 구스타프 후사크가 집권하고 검열이 강화되자 바출리크는 더 이상 당원이 아닌 상태로 반체제 작가들과 활동했다. 1973년 사미즈다트 총서 에디체 페틀리체(자물쇠 판본)를 시작해 1979년까지 운영했다. 프라하 작가 페스티벌은 그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이 출판사를 운영했고 금서 400종이 넘는 판본을 인쇄·배포했다고 기록한다. 이 수치는 장기간 지속된 출판 활동의 규모를 보여준다. 1976년 12월 헌장 77 준비 모임에 참석했고, 1977년 1월 6일 바츨라프 하벨, 배우 파벨 란도프스키와 함께 헌장 사본을 정부에 우송하려다 비밀경찰에 연행되어 심문받았다.
1978년 말 바출리크는 「용기에 관한 논평」을 발표해 헌장 77 운동 내부의 고립 위험을 비판했다. 그는 서명자 다수가 프라하와 브르노의 지식인이어서 일반 시민이 헌장과 유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비판은 헌장 77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논쟁을 촉진했고, 반체제 운동을 단일하고 이견 없는 집단으로 묘사하지 않도록 하는 그의 개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