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 라우리스틴

Marju Lauristin

소련 체제 안에서 자라 발트 독립운동의 지적 기둥이 된 사회학자

1988년 10월 라흐바린네 창립대회에서 사회학자 라우리스틴은 사비사르와 함께 연단에 서서 독립운동의 지적 초석을 놓았다.

마리우 라우리스틴은 에스토니아 공산당 고위 간부의 딸로 탈린에서 태어나 타르투 대학에서 언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1980년 「40인 서한」에 서명하여 에스토니아의 언어와 문화를 질식시키는 러시아화 정책에 공개 저항했고, 이 경험은 지식인으로서의 정치적 진로를 결정지었다. 1988년 에드가 사비사르와 함께 라흐바린네를 공동 창립하고 그 창립대회를 조직했으며, 라흐바린네의 지적 리더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독립 회복 후에는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냈고, 타르투 대학 교수로서 탈사회주의 전환의 사회학을 연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독립 회복 과정의 의회 지도력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라우리스틴은 에스토니아 공화국 최고회의 부의장으로 일하며, 소련 체제의 해체기에 독립 회복을 추진한 의회 지도부에 참여했다. 1991년 3월 3일 주민투표에서는 투표자의 77.83퍼센트가 공화국의 독립과 자치 회복에 찬성했다. 8월 모스크바 쿠데타 시도 중인 8월 20일 밤, 최고회의는 에스토니아의 국가 독립을 확인하고 외교 관계 회복을 추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라우리스틴은 찬성표를 던진 69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결의안은 헌법 초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헌법제정회의를 최고회의와 에스토니아 시민대표기구의 대표들로 구성하고, 새 헌법에 따른 의회 선거를 1992년에 실시하도록 정했다. 그 결과 최고회의는 독립 회복의 선언뿐 아니라 새 헌정 질서로의 이행 절차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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