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테먄 니키티치 류틴

Мартемьян Никитич Рютин
소련 러시아 1890–1937 ✕ 처형

류틴 강령」으로 스탈린 독재에 마지막 당내 저항을 조직한 우익 반대파

1932년 9월 OGPU 심문에서: "내 뒤에는 어떤 배후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나 자신이 이 조직의 주동자였고, 그 선두에 섰으며, 나 혼자 강령과 호소문 전부를 썼다." — 동지들을 감싸며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지려 한 순간.

이르쿠츠크 농민 가정 출신으로 1917년 볼셰비키에 합류, 하얼빈 소비에트 의장과 여러 지역 당서기를 역임하고 1927년 중앙위원 후보가 되었다. 강제 집단화를 목격한 후 우익 반대로 전환, 1932년 200쪽 분량의 「류틴 강령」을 집필해 스탈린 개인독재 타도를 호소했다. 이는 당내 마지막 조직적 반대운동이었다. 1932년 체포되어 1937년 25분 재판 끝에 사형 선고를 받고 당일 총살되었다. 1988년 복권.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류틴 강령과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동맹」

1932년 류틴은 구볼셰비키 카유로프, 이바노프, 갈킨 등과 함께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동맹」을 결성하고 두 편의 핵심 문서를 작성했다. 전당원에게 보내는 호소문 「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 전 당원에게」와 200쪽에 달하는 필사본 「스탈린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위기」다. 류틴은 이 글에서 스탈린이 '기만과 중상, 폭력과 테러'로 당을 장악하고 지난 5년간 최고의 볼셰비키 간부들을 지도부에서 축출해 개인독재를 수립했다고 비판했다. '모험주의적 공업화 속도'가 실질임금 붕괴와 인플레이션을 초래했으며, '모험주의적 집단화'가 전례 없는 폭력과 테러를 동반해 전국적 위기와 기근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류틴은 스탈린의 해임, 집단지도체제 복원, 강제 집단화 과잉의 시정, 당내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했다. 이 강령은 당내에서 마지막으로 조직화된 반스탈린 저항으로 평가된다. 구성원 한 사람의 밀고로 조직은 1932년 9월 발각되었고, 스탈린은 사형을 요구했으나 정치국이 저지해 류틴은 10년형을 받았다. 이후 이 문서를 소지하거나 열람한 것만으로도 체포 사유가 되어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도 유배되었다. 이 사건은 모든 조직적 당내 반대를 원천봉쇄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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