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현대사를 해석한 영국 역사가
스탈린에게 '영원한 적'이라는 관념의 창조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마틴 매콜리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소련과 동유럽의 정치사를 연구한 역사가다. 그는 UCL 슬라브·동유럽학부에서 가르치며 스탈린주의, 흐루쇼프 시대, 냉전과 소련의 흥망을 폭넓게 다뤘다. 20차 당대회 비밀연설을 그는 당을 효율적인 기구로 되돌리려는 개혁이자, 흐루쇼프가 경쟁자들의 권위를 약화한 권력투쟁으로도 해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53–1956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서 측량학 수학
- 1961파리 소르본에서 프랑스 문명 연구
- 1962–1968런던대학교에서 학위 과정 및 박사학위 취득
- 1968–1978런던대학교 슬라브·동유럽학부 선임강사
- 1975『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국가』 편집·출간
- 1976『흐루쇼프와 소비에트 농업 발전』 출간
- 1995『흐루쇼프 시대, 1953~1964』 출간
- 2007『소련의 흥망』 출간
관련 역사 사건
처녀지 논쟁 연구
매콜리의 학문적 핵심은 흐루쇼프 시기 소련 농업정책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1969년 모스크바의 티미랴제프 농업대학에서 수학하며 소련 농정을 직접 접했고, 그 위에 박사논문을 얹어 1976년 『흐루쇼프와 소비에트 농업의 발전: 처녀지 계획, 1953~1964』를 출간했다. 이 책은 처녀지 논쟁을 복원한 표준 저작으로 남아 있다.
그가 재구성한 논쟁의 축은 광역개발과 집약개발의 대립이었다. 흐루쇼프는 카자흐스탄·서시베리아·우랄의 휴경지를 새로 갈아 단기간에 곡물 증산을 이루는 길을 택했고, 말렌코프는 기존 경작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길을 주장했다. 몰로토프·카가노비치 등 당 지도부도 처녀지 계획이 경제적으로 부실하다고 반대했다. 매콜리는 1954년 첫 수확의 성공으로 흐루쇼프가 목표를 계속 올리며 지도부 비판을 잠재운 과정을 문서로 추적했고, 동시에 1955년 가뭄과 그 뒤 이어진 생산량의 급등락, 단일 재배에 따른 토양 침식이라는 환경적 대가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해석에서 처녀지 계획은 단순한 농정 실험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장이었다. 흐루쇼프가 농업개혁의 공을 자신이 아니라 말렌코프에게 돌리자, 흐루쇼프는 더 과감한 자신의 계획을 내세워 경쟁자의 권위를 잠식했다. 매콜리는 또 브레즈네프가 흐루쇼프 실각 후에도 계획을 이어받아 처녀지를 항구적 곡창지대로 전환하려 한 점을 짚어, 이 정책의 제도적 잔여가 흐루쇼프 개인을 넘어 지속되었음을 보여주었다. 1995년 『흐루쇼프 시대, 1953~1964』와 1991년 니키타 흐루쇼프 평전으로 그는 이 연구를 종합해 흐루쇼프 시기의 일반 독자용 해석으로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