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전국 평의회 대회에서 의회제를 관철한 사회민주당 우파, 「코엔로이스」
독일의 언론인·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1902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1912~1918년 로이스 선거구 제국의회 의원이어서 「코엔로이스」라고도 불린다. 당내 우파로 에베르트 지도부를 지지했고, 11월 혁명 때 베를린 집행평의회 위원과 12월 선출된 중앙평의회 의장을 지내며 전국 평의회 대회가 의회제를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34년 파리로 망명해 그곳에서 숨졌다.
다른 이름: 막스 코엔로이스
주요 활동과 소속
-
1900–
사회운동·조직
-
1902–1963
이념·선전
-
1912–1918
독일 국가기관독일 제국의회 의원
입법·국가 대표 -
1918–1919
독일 노동자·병사 평의회독일 사회주의 공화국 중앙평의회 의장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02사회민주당에 들어갔다.
- 1912.12.19로이스 선거구에서 제국의회 의원으로 뽑혔다.
- 1918.12중앙평의회 부의장, 이어 의장.
- 1934파리로 망명했다.
- 1947–1951사회민주당의 프랑스 공식 대표.
평의회 대회와 의회제
코엔은 상업 교육을 받고 사무원과 수출업자로 일하다 1900년 노동조합에, 1902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갔고, 1904년부터 《사회주의 월보》와 《포스 신문》 등에 글을 쓰는 언론인이 되었다. 1912년 12월 로이스 선거구 보궐선거에서 첫 투표에 7911표로 당선되었는데, 이때 낙선한 후보 가운데 하나가 뒷날의 총리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는 프로이센 육군부 원자재과에서 일했고, 당내 우파로서 미국과 영국에 맞서는 균형추로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패권을 전쟁 목표로 요구했다. 군부와의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에베르트와 샤이데만의 지도부를 지지했다.
11월 혁명 동안 그는 다수파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베를린 병사 평의회의 신임을 받았고, 베를린 집행평의회 위원과 1918년 12월 선출된 중앙평의회의 부의장과 의장을 지냈다. 1918년 12월 전국 노동자·병사 평의회 대회에서 그는 의회제를 받아들이는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바이마르 시기에는 임시 제국경제평의회 위원과 정부 경제 고문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