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 첫날 밤,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기로 한 국가안보보좌관
레이 클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걱정해온 그것들, 정말 있는 것 같습니다.' 번디가 물었다. '확실한가?'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1961–1966)으로,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베트남전 확전의 핵심 설계자였다. 1962년 10월 15일 저녁 CIA로부터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증거를 보고받았으나, 비밀 유지와 준비 부족을 이유로 다음 날 아침까지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1966년 퇴임 후 포드재단 회장을 지냈고, 말년에는 핵무기 선제사용 포기를 주창하며 핵군축 논의에 기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61–1966 보안·정보·치안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40예일대학교 수학 학사
- 1943–1946미군 정보장교
- 1949–1953하버드대학교 정부학 교수
- 1953–1961하버드대학교 문리학부 학장
- 1961–1966미국 국가안보보좌관
- 1966–1979포드재단 회장
- 1979–1989뉴욕대학교 역사학 교수
관련 역사 사건
말년의 핵군축 활동
1966년 국가안보보좌관직에서 물러난 번디는 포드재단 회장으로서 1979년까지 재직한 뒤, 뉴욕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학계에 복귀했다. 이 무렵 그는 조지 F. 케넌, 로버트 맥나마라, 제럴드 스미스와 함께 '네 사람 모임'으로 알려진 그룹을 결성하고 미국의 핵정책을 주제로 글을 쓰고 발언했다. 이 모임이 1983년 《포린 어페어스》에 발표한 글은 소련의 유럽 침공을 막기 위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선제 사용' 정책을 끝낼 것을 제안해 널리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88년 저서 《위험과 생존: 첫 50년간의 폭탄 선택》을 통해 이 논의에 참여했으며, 이들의 작업은 훗날 전략무기제한조약(SALT II)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9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카네기 코퍼레이션에서 핵 위험 감소 위원회 위원장(1990~1993)과 상주 학자(1993~1996)로 일하며 핵군축 논의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