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조지 번디

McGeorge Bundy
미국 국가기관 미국 미국 1919–1996 ○ 심장마비

쿠바 미사일 위기 첫날 밤,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기로 한 국가안보보좌관

레이 클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걱정해온 그것들, 정말 있는 것 같습니다.' 번디가 물었다. '확실한가?'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1961–1966)으로,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베트남전 확전의 핵심 설계자였다. 1962년 10월 15일 저녁 CIA로부터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증거를 보고받았으나, 비밀 유지와 준비 부족을 이유로 다음 날 아침까지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1966년 퇴임 후 포드재단 회장을 지냈고, 말년에는 핵무기 선제사용 포기를 주창하며 핵군축 논의에 기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말년의 핵군축 활동

1966년 국가안보보좌관직에서 물러난 번디는 포드재단 회장으로서 1979년까지 재직한 뒤, 뉴욕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학계에 복귀했다. 이 무렵 그는 조지 F. 케넌, 로버트 맥나마라, 제럴드 스미스와 함께 '네 사람 모임'으로 알려진 그룹을 결성하고 미국의 핵정책을 주제로 글을 쓰고 발언했다. 이 모임이 1983년 《포린 어페어스》에 발표한 글은 소련의 유럽 침공을 막기 위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선제 사용' 정책을 끝낼 것을 제안해 널리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88년 저서 《위험과 생존: 첫 50년간의 폭탄 선택》을 통해 이 논의에 참여했으며, 이들의 작업은 훗날 전략무기제한조약(SALT II)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9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카네기 코퍼레이션에서 핵 위험 감소 위원회 위원장(1990~1993)과 상주 학자(1993~1996)로 일하며 핵군축 논의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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