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징발이 씨 뿌릴 사람마저 없앨 것이라고 몰로토프에게 경고한 당 서기, 4년 뒤 총살되다
"곧 씨 뿌리고 수확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1932년 11월, 하타예비치가 몰로토프에게. 당일 답신: "진정한 볼셰비키는 국가의 필요를 먼저 놓아야 합니다."
멘델 하타예비치는 1893년 고멜의 유대인 상인 가정에서 태어나 치과기공사로 일하다 1913년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1932년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2서기로서 11월 몰로토프에게 "콜호스의 최소한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으면 곧 씨 뿌리고 수확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서한으로 경고했으나, 몰로토프는 "진정한 볼셰비키는 국가의 필요를 먼저 놓아야 한다"고 답했다. 1933년부터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주당 제1서기로 좌천된 뒤에는 오히려 대기근의 집행자가 되어 기아와 식인 보도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1937년 대숙청 와중 체포되어 반혁명 테러조직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 1956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13–1917고멜에서 지하 볼셰비키 활동, 여러 차례 체포, 예니세이현 유형, 1917년 3월 사면
- 1917–1921고멜·사마라 당 간부; 체코군에 포로로 잡혀 고문으로 오른손 마비; 서부전선 제21소총사단 정치위원
- 1921–1925고멜현당 책임비서(1921–23), 오데사현당 책임비서(1923–24), 전연방 공산당 중앙위 조직배치부 부장(1924–25)
- 1925–1928타타르 주당 책임비서
- 1928–1932중부볼가 변경당 제1서기: 대규모 집단화 추진, 쿨라크 대량 체포·추방 지휘
- 1932.10–1933.01우크라이나 공산당 제2서기: 곡물 몰수 지령 공동 서명; 11월 몰로토프에 기근 경고 서한
- 1933–1937.03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주당 제1서기; 기아와 식인 사례를 스탈린에게 보고하고도 1934년 당대회에서 집단화의 승리를 찬양
- 1937.03–10재차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2서기; 9월 체포, 10월 27일 사형선고, 10월 30일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