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 말기의 농업장관
1978년 소련은 사상 최대 2억 3,700만 톤의 곡물을 수확했다. 메시야츠는 회고했다: "우리는 헥타르당 1센트너의 비료를 썼고, 유럽은 10센트너였다."
쿠즈바스 광부의 아들로 1976~1985년 소련 농업장관을 지내며 침체기 식량난 속에서 농업을 책임졌다. 이후 고르바초프 체제 모스크바주당 제1서기로 페레스트로이카 시기까지 활동했다.
경력 연표
- 1953–1958MTS 농업주임·소장 (모스크바주)
- 1958–1961체호프 지구 집행위원장·볼로콜람스크 지구당 제1서기
- 1965–1971러시아공화국 농업부 제1차관
- 1971–1976카자흐스탄 공산당 제2서기
- 1976–1985소련 농업장관
- 1985–1990모스크바주당 제1서기
관련 역사 사건
광부의 아들에서 장관까지: 1953–1976
메시야츠는 케메로보주 키셀롭스크의 광부 가정에서 태어나 13세에 노동을 시작했다. 1953년 티미랴제프 모스크바 농업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흐루쇼프의 농업 개혁이 한창이던 모스크바주 로파스냐(현 체호프) 지역의 MTS 주임 농학자로 배치되었다. 이듬해 MTS 소장이 되었고, 5년간의 현장 경험을 인정받아 1958년 체호프 지역 집행위원장, 1959년 볼로콜람스크 지역당 제1서기로 승진했다. 1961년 모스크바주 농업관리국장을 거쳐 1964년 주당 제2서기, 1965년 러시아공화국 농업부 제1차관이 되었다. 이 12년 동안 그는 흐루쇼프의 옥수수 캠페인, 국영농장 통합, 그리고 브레즈네프 집권 초기 농업 투자 확대를 현장에서 모두 경험했다. 1971년 브레즈네프의 직접적인 신임을 받아 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서기로 파견되었고, 쿠나예프 제1서기 아래에서 처녀지 개간의 후속 사업과 대규모 축산 단지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카자흐스탄에서 5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1976년 3월 소련 농업장관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