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차크군의 볼가 진격을 이끌고 프룬제에게 무너진 포병 장군
1915년 7월 7일, 후퇴하던 12보병사단의 전열에 균열이 생기자 한진은 직접 예비 대대를 이끌고 틈새로 달려가 후퇴하는 부대를 멈춰 세웠다.
오렌부르크 카자크 출신의 러시아 제국군 포병 장교로, 루소-일본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의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포병 지휘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내전기에는 시베리아 백군의 우랄 군단을 창설하고 콜차크 휘하 서부군 사령관으로 1919년 3월 전략적 돌파를 이끌어 볼가 강 30km 앞까지 진격했으나, 과신장된 전선이 프룬제의 남부군집단 반격에 노출되어 부굴마·부구루슬란에서 결정적 패배를 겪었다. 실각 후 콜차크 정부의 마지막 군무장관을 지냈고, 중국 망명을 거쳐 1945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10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으며 사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890–1893오렌부르크 사관학교 → 미하일롭스코예 포병학교 졸업, 코룬지 임관
- 1899미하일롭스카야 포병 아카데미 수석 졸업
- 1904–1905러일전쟁: 제3 동시베리아 포병여단 제4포대장, 4급 성 게오르기 훈장
- 1914–1916제1차 세계대전: 제19포병여단장 → 제12보병사단장 → 제8군 포병감, 브루실로프 공세 포병 기획 주도
- 1918–1919우랄 군단장 → 콜차크 서부군 사령관, 볼가 진격 → 부구루슬란 패배 후 경질. 포병대장 진급
- 1919–1920콜차크 정부 군무장관, '3인 위원회' 일원으로 옴스크 붕괴 수습
- 1920–1945중국 망명 (다롄·상하이·창춘), ROVS 극동부장 역임
- 1945–1961SMERSH 체포, 10년형 → 1955년 석방, 잠불에서 사망. 1992년 사후 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