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노프의 반형식주의 공세에 희생된 문화행정 수장, 고골·톨스토이 연구로 부활한 문학학자
1948년 2월 10일 정치국 결의는 "소련 각료회의 예술문제위원회(흐랍첸코 동지)와 소비에트 작곡가동맹 조직위원회가 사실상 소비에트 인민에게 이질적인 형식주의적 경향을 조장했다"고 못 박았다.
스탈린 시대 최고 문화행정가로, 1939년부터 1948년까지 소련 인민위원회(후 각료회의) 산하 예술문제위원회 의장을 지내며 모든 연극·음악·미술 기관을 총괄했고 스탈린상 예술·문학 분과 위원을 겸했다. 1948년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을 둘러싼 지하노프의 반형식주의 캠페인 때 '형식주의적 경향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이후 문학연구자로 전향하여 고골·톨스토이 연구의 권위자가 되었고, 1966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에 선출되어 196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문학·언어 분과의 아카데미크-서기를 지냈다.
경력 연표
- 1924스몰렌스크 대학 졸업, 중등학교 교사
- 1928–1931스베르들로프 공산대학·보로네시 대학 문학사 강사
- 1931–1936공산아카데미 문학예술연구소 교무주임, 붉은교수문학연구소 러시아문학 주임
- 1938–1939소련 인민위원회 예술문제위원회 부의장
- 1939–1948소련 인민위원회/각료회의 예술문제위원회 의장, 스탈린상 예술·문학분과 위원
- 1948–1963소련 과학아카데미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1954–1957잡지 《옥탸브리》 편집장
- 1967–1986소련 과학아카데미 문학·언어 분과 아카데미크-서기(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