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보리소비치 흐랍첸코

Михаил Борисович Храпч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러시아 1904–1986 ○ 자연사

지하노프의 반형식주의 공세에 희생된 문화행정 수장, 고골·톨스토이 연구로 부활한 문학학자

1948년 2월 10일 정치국 결의는 "소련 각료회의 예술문제위원회(흐랍첸코 동지)와 소비에트 작곡가동맹 조직위원회가 사실상 소비에트 인민에게 이질적인 형식주의적 경향을 조장했다"고 못 박았다.

스탈린 시대 최고 문화행정가로, 1939년부터 1948년까지 소련 인민위원회(후 각료회의) 산하 예술문제위원회 의장을 지내며 모든 연극·음악·미술 기관을 총괄했고 스탈린상 예술·문학 분과 위원을 겸했다. 1948년 무라델리의 오페라 〈위대한 우정〉을 둘러싼 지하노프의 반형식주의 캠페인 때 '형식주의적 경향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이후 문학연구자로 전향하여 고골·톨스토이 연구의 권위자가 되었고, 1966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에 선출되어 196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문학·언어 분과의 아카데미크-서기를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문학이론과 창작 개성의 연구

흐랍첸코는 1920년대 말부터 소비에트 문학의 양식과 방법을 연구했고, 문학행위의 이론을 고전 작가 연구와 결합했다. 1952년 《고골의 〈죽은 혼〉》, 1954년 《고골의 창작》, 1963년 《예술가로서의 레프 톨스토이》를 펴내며 고골과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작가의 세계관, 예술적 방법, 창작상의 개별성을 함께 분석했다. 1970년 출간한 《작가의 창작 개성과 문학의 발전》에서는 예술적 방법과 세계관을 동일시하는 견해를 비판하고, 창작에서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관계를 다루는 유물론적 이론을 제시했다. 이 책은 푸시킨,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숄로호프 등 러시아·소비에트 작가와 서유럽 작가의 사례를 이론 논의에 연결했다. 흐랍첸코는 문학현상의 역사적 기능을 연구하는 방법도 발전시켰으며, 1973년 글에서 기호학적 원리를 마르크스주의 문학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범위와 경로를 논했다. 이 연구로 1974년 레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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