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바실리예비치 흐루니체프

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Хруничев
소련 러시아 1901–1961 ○ 자연사

스탈린에게 영국 제트엔진 구매를 설득해 MiG-15 시대를 연 항공공업 장관

1946년, 흐루니체프와 야코블레프가 영국제 제트엔진 구매를 건의하자 스탈린이 물었다. '어떤 바보가 자기 비밀을 우리에게 팔겠는가?' 노동당 정부는 기꺼이 롤스로이스 닌 엔진과 청사진을 넘겼고, 이를 복제한 RD-45가 MiG-15의 심장이 되었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민병대·공장 관리직을 거쳐 소련 항공공업 장관(1946~1953)까지 오른 산업 행정가. 전시에는 탄약 제1부인민위원으로서 포탄·항공폭탄 증산을 지휘했고, 종전 후 항공공업 수장으로서 쇠퇴한 소련 제트 기술의 돌파구를 찾았다. 1946년 야코블레프와 함께 스탈린을 설득해 영국 롤스로이스 닌 엔진을 도입, 이를 역설계한 클리모프 RD-45가 MiG-15에 탑재되며 소련은 단숨에 제트 전투기 시대에 진입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흐루니체프 우주센터에 남아 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롤스로이스 닌 엔진 구매 — MiG-15를 낳은 도박

1946년 초, 소련의 제트기 개발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독일제 HeS-011 축류식 엔진을 완성하지 못했고, 미코얀의 신형 기체는 동력이 없어 날지 못했다. 이때 항공공업 장관 흐루니체프는 항공기 설계자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와 함께 스탈린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영국에서 완성된 제트엔진을 구매하자는 것이었다.

스탈린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어떤 바보가 자기 비밀을 우리에게 팔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 정부와 친소 성향의 무역장관 스태퍼드 크립스는 롤스로이스 닌(Nene) 및 더웬트(Derwent) 엔진의 수출을 기꺼이 승인했다. 1946년 6월 17일, 소련 각료회의는 영국 제트엔진 구매를 공식 결정했고, 같은 해 9월 롤스로이스는 닌 엔진 10기 판매 허가를 받았다. 1947년 3월에는 15기가 추가 승인되었다. 영국 공군 참모부와 MI5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 55기의 닌·더웬트 엔진이 소련으로 향했다.

그 결과는 극적이었다. 블라디미르 클리모프의 설계국이 닌을 역설계해 RD-45(훗날 VK-1)를 생산했고, 이 엔진을 탑재한 MiG-15는 1947년 12월 첫 비행에 성공했다. 한국전쟁(1950~1953)에서 MiG-15는 미 공군의 B-29 폭격기를 격추하며 서방에 충격을 안겼고, 소련은 단숨에 제트 전투기 시대의 선두 주자로 올라섰다. 영국은 자국이 판매한 엔진 복제품을 장착한 전투기와 3년 뒤 공중전을 벌이게 된 셈이다.

1948년 11월 22일, 영국 하원에서 이 결정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미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흐루니체프의 도박은 소련 항공사에서 가장 성공한 기술 도입이자, 냉전 초기 군비 경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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