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4를 낳고 폐렴으로 사라진 41세의 수석설계자
1940년 3월, 완성되지 않은 T-34 시제차 두 대를 직접 운전해 눈길 750km를 달려 크렘린에 도착했다. 스탈린 앞에서 시동을 걸며 마지막 남은 힘을 쏟은 그는 귀환 후 폐렴으로 쓰러졌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제과공장 견습생을 거쳐 30세에 공학을 시작한 소련의 탱크 설계자. 하리코프 공장에서 경전차 BT 계열의 현대화를 이끌었고, 1938년부터는 순수 궤도식 중형전차 A-32 프로젝트를 추진해 T-34로 발전시켰다. 1940년 3월, 미완성 시제차 두 대를 직접 몰고 하리코프에서 모스크바까지 눈길 750km를 주파해 크렘린 앞에서 스탈린에게 선보였으나, 그 무리로 폐렴에 걸려 41세로 사망했다. 그가 만든 T-34는 독소전쟁 전체를 관통하는 소련 기갑 전력의 중추가 되었다.
경력 연표
- 1917–18러시아 제국군 징집, 서부전선에서 부상
- 1918–21붉은군대 자원입대, 차리친·북부전선에서 전투
- 1919RKP(b) 입당, 제3철도여단 당세포 서기
- 1921–24스베르들로프 공산대학 졸업
- 1924–29뱟카에서 제과공장장·당 선전선동부장
- 1929–34레닌그라드 공과대학 기계공학 전공, 중형전차 변속기로 졸업
- 1934–36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 전차설계국, T-29·T-46-1 개발 참여
- 1936–37하리코프 183호 공장 KB-190 설계국장, BT-7 디젤 개량 완료
- 1937–39KB-24 조직, A-20·A-32 개발 — A-32가 T-34로 발전
- 1939.12T-34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붉은군대 정식 채택
- 1940.3하리코프-모스크바-하리코프 시제차 시험주행 직접 수행
- 1940.9폐렴 악화로 사망, 후임 수석설계자 A. 모로조프
관련 역사 사건
A-20 대 A-32: 설계 논쟁과 스탈린의 개입
1937년 코시킨이 하리코프 공장에 부임했을 때, 소련 전차 설계의 주류는 여전히 '크리스티식' 차륜-궤도 병용 방식이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에서 BT 전차들은 대전차포 앞에 속수무책으로 불타올랐고, 장갑을 두껍게 하자니 변속기가 무게를 견디지 못했으며 차륜 주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군 상층부는 차륜-궤도 병용을 고집하며 20mm 장갑의 A-20 개발을 요구했지만, 코시킨은 이미 그 한계를 꿰뚫고 있었다.
그는 비밀리에 순수 궤도식 대안 A-32의 설계를 병행했다. 차륜 구동계를 제거하면 절약되는 중량을 장갑과 화력에 쏟아부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1938년 4월 28일 국방인민위원회 회의에서 코시킨은 정식 발주에도 없는 '궤도 전용 전차'의 제작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의석에 있던 스탈린이 "공장의 발의를 제한하지 말라"며 코시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한마디가 T-34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정치적 돌파구였다.
1939년 여름 쿠빈카에서 두 시제차가 나란히 비교 시험을 받았다. A-20이 포장도로에서 더 빨랐지만, A-32는 야지 기동성과 장갑 방호력에서 압도적이었다. 코시킨은 이미 76.2mm 주포를 얹은 개량형 T-32를 선보이며 "이것이 중형전차의 미래"라고 주장했다. 1939년 12월 19일 국방위원회 결정 제443호로 45mm 경사장갑을 두른 A-32, 즉 T-34가 붉은군대에 정식 채택되었다. 한 제과공 출신 설계자의 완강한 기술적 신념이 관료적 타성을 뚫고 소련 기갑 전력의 방향을 바꾼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