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스테파노비치 올민스키

Михаил Степанович Ольминский
소련 러시아 1863–1933 ○ 자연사

이스트파르트의 창설자이자 볼셰비키 당사 편찬의 설계자

5학년 때 큰 쉬는 시간, 급우가 교실 문을 닫고 교단에 올라 불법 팸플릿 「죽음에는 죽음으로」를 낭독했다. 메젠초프 헌병사령관 암살에 대한 크랍친스키의 글은 올민스키에게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나로드나야 볼랴에서 출발해 1904년 레닌의 지도 아래 볼셰비키에 합류한 혁명적 문필가다. 차르 감옥에서 5년 가까이 독방 생활을 견뎠고, 신문 《즈베즈다》, 《프라우다》, 잡지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의 편집을 맡으며 볼셰비키 저널리즘의 얼굴이 되었다. 1920년 이스트파르트(당사위원회)를 창설해 소비에트 당사 편찬의 제도적 기초를 놓았고, 살티코프-셰드린 연구로 문학비평사에도 이름을 남겼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필명 '갈료르카' — 1904년 당내 민주주의 논쟁

1904년 가을, 제네바에서 볼셰비키-멘셰비키 분열이 깊어지던 시기에 올민스키는 '갈료르카(Галёрка·객석의 야유꾼)'라는 필명으로 일련의 팸플릿을 발표했다. 「보나파르트주의를 타도하라(Долой бонапартизм)」라는 제목은 레닌이 직접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올민스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저작은 「새로운 길로(На новый путь)」였다. 제2차 당대회 이후 멘셰비키의 《이스크라》가 '당의 원로'를 숭배하며 당내 민주주의를 조롱거리로 삼자, 올민스키는 역설적인 논증을 펼쳤다. 바로 레닌이야말로 당 조직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원칙의 옹호자라는 주장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볼셰비키 서클에서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되던 상황에서, 이 팸플릿은 당원 대중에 대한 신뢰와 조직 민주화를 정면으로 주창했다. 레닌은 원고를 검토한 뒤 출판을 승인했으며, 수정된 원고는 현재 이스트파르트 기록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 작업은 올민스키가 단순한 당의 필경사가 아니라 독자적 이론가로서 레닌과 대등하게 사상적 교류를 나누던 초기 볼셰비키 저널리즘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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