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세르게예비치 랴잔스키

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Рязанский
소련 러시아 1909–1987 ○ 자연사

소련 우주로켓의 '라디오맨': 모든 로켓과 위성의 무선 시스템을 책임진 수석설계자

1928년, 열아홉 살 랴잔스키는 자작 단파무전기 앞에 앉아 있었다. 북극에서 비행선 이탈리아 호가 추락하고 쇄빙선 크라신이 구조에 나섰다. 전파가 대기를 가르자 연결이 이루어졌다 — 소련 최초의 단파구조교신이었다. 그는 이 순간을 평생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위대한 조국전쟁 중 모스크바 방공의 핵심이 된 페그마티트 레이더를 개발했고, 1946년부터 NII-885 수석설계자로서 R-7 대륙간탄도미사일, 스푸트니크, 보스토크, 소유스, 달·금성·화성 탐사선의 무선유도·원격측정·추적 시스템을 설계했다. 코롤료프·글루시코·바르민·필류긴·쿠즈네초프와 함께 '6인 수석설계자회의'를 구성했으며, 동료들 사이에서는 갈등을 중재하는 '평화주의자'로 불렸다. 1987년 사망할 때까지 소련 로켓에 그의 무선 장비가 실리지 않은 적은 없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스푸트니크의 목소리 — 세계가 들은 '삐-삐' 신호

랴잔스키가 역사에 남긴 가장 상징적인 업적은 1957년 10월 4일 밤 지구 전역의 라디오 아마추어들이 수신한 그 유명한 '삐-삐' 신호다.

1957년 2월 15일, 코롤료프는 랴잔스키의 NII-885와 PS-1 위성(훗날 '스푸트니크 1호')용 무선송신기 사양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코롤료프의 요구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했다: "가장 낡은 수신기로도 전 세계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랴잔스키는 최소 2주간 '양호한 신호'를 보장했으나, 인공위성의 전파가 우주 공간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주로 나간 송신기는 인류 최초였기 때문이다.

송신기 제작은 NII-885 산하 콘스탄틴 그린가우츠의 전파전파연구실에 맡겨졌다. 젊은 기술자 뱌체슬라프 랍포가 밤낮으로 매달려 총 6대의 송신기를 제작했고, 시험용·예비용·실전용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그린가우츠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05MHz 단파 송신기를 VHF 송신기와 함께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관철되면서 스푸트니크의 신호는 문자 그대로 지구 전역에서 수신 가능해졌다.

랍포가 훗날 회고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늦은 밤 코롤료프가 실험실에 불쑥 찾아와 송신기 신호를 듣고 싶다고 했다. 랍포는 압력과 온도에 따라 신호음의 주파수와 길이가 달라지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하며 덧붙였다: "아시죠,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죽는 순간에는 다르게 삑삑거릴 겁니다." 코롤료프는 매우 흡족해하며, 부끄러운 듯 덧붙였다: "뭔가 말이라도 하게 만들 순 없겠나…?"

10월 4일, R-7 로켓에 실린 PS-1이 궤도에 오르자 랴잔스키의 송신기는 정확히 약속된 신호를 쏟아냈다. 소련의 라디오 아마추어에서 미국의 추적국까지, 전 세계가 그 단순한 '삐-삐' 소리를 통해 인류가 우주시대에 진입했음을 알았다. 이 송신기는 랴잔스키가 코롤료프와 함께 작업한 첫 우주 프로젝트이자, 이후 모든 소련 우주선 무선시스템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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