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우주로켓의 '라디오맨': 모든 로켓과 위성의 무선 시스템을 책임진 수석설계자
1928년, 열아홉 살 랴잔스키는 자작 단파무전기 앞에 앉아 있었다. 북극에서 비행선 이탈리아 호가 추락하고 쇄빙선 크라신이 구조에 나섰다. 전파가 대기를 가르자 연결이 이루어졌다 — 소련 최초의 단파구조교신이었다. 그는 이 순간을 평생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위대한 조국전쟁 중 모스크바 방공의 핵심이 된 페그마티트 레이더를 개발했고, 1946년부터 NII-885 수석설계자로서 R-7 대륙간탄도미사일, 스푸트니크, 보스토크, 소유스, 달·금성·화성 탐사선의 무선유도·원격측정·추적 시스템을 설계했다. 코롤료프·글루시코·바르민·필류긴·쿠즈네초프와 함께 '6인 수석설계자회의'를 구성했으며, 동료들 사이에서는 갈등을 중재하는 '평화주의자'로 불렸다. 1987년 사망할 때까지 소련 로켓에 그의 무선 장비가 실리지 않은 적은 없었다.
경력 연표
- 1928소련 최초 단파교신: 쇄빙선 크라신과 통신 성공
- 1929–31니즈니노브고로드 무선연구소, 군용 무선국 개발
- 1935–41오스테흐비우로: 무선조종 전차·항공기·어뢰정 개발
- 1941–45페그마티트(P-2) 레이더 주임설계자 — 모스크바 방공, 스탈린상
- 1946–54NII-885 수석설계자: R-1부터 R-7까지 탄도미사일 무선유도체계
- 1957–65스푸트니크·보스토크·소유스·달·금성·화성 탐사선 무선시스템, 레닌상
- 1965–86NIIP(후일 RNII KP) 수석설계자 겸 과학지도자
관련 역사 사건
스푸트니크의 목소리 — 세계가 들은 '삐-삐' 신호
랴잔스키가 역사에 남긴 가장 상징적인 업적은 1957년 10월 4일 밤 지구 전역의 라디오 아마추어들이 수신한 그 유명한 '삐-삐' 신호다.
1957년 2월 15일, 코롤료프는 랴잔스키의 NII-885와 PS-1 위성(훗날 '스푸트니크 1호')용 무선송신기 사양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코롤료프의 요구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했다: "가장 낡은 수신기로도 전 세계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랴잔스키는 최소 2주간 '양호한 신호'를 보장했으나, 인공위성의 전파가 우주 공간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주로 나간 송신기는 인류 최초였기 때문이다.
송신기 제작은 NII-885 산하 콘스탄틴 그린가우츠의 전파전파연구실에 맡겨졌다. 젊은 기술자 뱌체슬라프 랍포가 밤낮으로 매달려 총 6대의 송신기를 제작했고, 시험용·예비용·실전용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그린가우츠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05MHz 단파 송신기를 VHF 송신기와 함께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관철되면서 스푸트니크의 신호는 문자 그대로 지구 전역에서 수신 가능해졌다.
랍포가 훗날 회고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늦은 밤 코롤료프가 실험실에 불쑥 찾아와 송신기 신호를 듣고 싶다고 했다. 랍포는 압력과 온도에 따라 신호음의 주파수와 길이가 달라지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하며 덧붙였다: "아시죠,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죽는 순간에는 다르게 삑삑거릴 겁니다." 코롤료프는 매우 흡족해하며, 부끄러운 듯 덧붙였다: "뭔가 말이라도 하게 만들 순 없겠나…?"
10월 4일, R-7 로켓에 실린 PS-1이 궤도에 오르자 랴잔스키의 송신기는 정확히 약속된 신호를 쏟아냈다. 소련의 라디오 아마추어에서 미국의 추적국까지, 전 세계가 그 단순한 '삐-삐' 소리를 통해 인류가 우주시대에 진입했음을 알았다. 이 송신기는 랴잔스키가 코롤료프와 함께 작업한 첫 우주 프로젝트이자, 이후 모든 소련 우주선 무선시스템의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