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프 곁에서 부인민위원까지 오른 뒤 심문실에서 죽어 간 측근
1938년 12월 체포되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심문 중에 사망했다. 예조프의 조서가 공범으로 꼽은 다섯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탐보프 현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918년 볼셰비키에 입당했고, 군사위원과 군관구 행정직 등 군·행정 경력을 거쳐 모스크바시 행정에서 일했다. 예조프 시기인 1937년 7월 NKVD 총무경리국장이 되었고 곧 내무부인민위원으로 승진했으며, 그해 12월 소련 임업인민위원으로 옮겨 1938년 10월까지 재임했다. 국가보안 소좌 계급과 적성훈장을 받았고, 예조프의 비서 세라피마 리조바와 부부였다. 예조프 몰락 뒤인 1938년 12월 체포되었고, 예조프의 조서가 자기 음모 집단의 일원으로 꼽은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1939년 1월 19일 불법 수사 방법이 동원된 심문 끝에 사망했으며, 1955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11–1925군사위원·군관구 행정직
- 1930년대 전반농업 행정과 모스크바시 행정 근무
- 1937.7–8NKVD 총무경리국(AKhU)장
- 1937.8–12소련 내무부인민위원
- 1937.12–1938.10소련 임업인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