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이바노비치 리조프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Рыж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89–1939 ✕ 심문 중 사망

예조프 곁에서 부인민위원까지 오른 뒤 심문실에서 죽어 간 측근

1938년 12월 체포되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심문 중에 사망했다. 예조프의 조서가 공범으로 꼽은 다섯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탐보프 현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918년 볼셰비키에 입당했고, 군사위원과 군관구 행정직 등 군·행정 경력을 거쳐 모스크바시 행정에서 일했다. 예조프 시기인 1937년 7월 NKVD 총무경리국장이 되었고 곧 내무부인민위원으로 승진했으며, 그해 12월 소련 임업인민위원으로 옮겨 1938년 10월까지 재임했다. 국가보안 소좌 계급과 적성훈장을 받았고, 예조프의 비서 세라피마 리조바와 부부였다. 예조프 몰락 뒤인 1938년 12월 체포되었고, 예조프의 조서가 자기 음모 집단의 일원으로 꼽은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1939년 1월 19일 불법 수사 방법이 동원된 심문 끝에 사망했으며, 1955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7~1926년 모르샨스크·브랸스크의 군사·행정 업무

리조프는 1911년 징집되어 제1차 세계대전 중 모르샨스크 향 군사책임자 사무소의 서기로 일했다. 1917년 말에는 그 사무소의 책임자가 되었고, 한 전기 자료는 같은 시기 그가 모르샨스크에서 적위대 부대를 조직했다고 적는다. 1918년 7월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한 뒤 1918~1919년 모르샨스크 향 군사위원부 동원과장, 1919년 향 군사위원을 지냈고, 1919년 8월부터 1920년 3월까지는 향 군사위원과 함께 향 혁명위원회 의장을 겸했다. 1920년 3~6월에는 탐보프 현 군사위원 보좌를 맡았는데, 그해 탐보프 지역은 대규모 농민 반란의 무대가 되었으나 그 진압에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전기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다. 1920년부터 1925년까지는 브랸스크 향 군사위원 겸 브랸스크 수비대장으로 일했고(브랸스크 현 군사위원으로 기술되기도 한다), 1922년 12월부터 1923년 8월까지 브랸스크 현 집행위원회 부의장을 겸했다. 1925~1926년에는 브랸스크의 제37소총사단 관리부장을, 이어 브랸스크 지역군 관구장을 맡았다. 이 무렵 그는 보리스글레프스크 시 4년제 학교(1906)와 프룬제 적군군사아카데미 고급지휘요원 연수과정(1926)을 마쳤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