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정치와 농노제를 신랄하게 풍자한 19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풍자작가
1885~1886년 병든 셰드린을 찾아온 학생 대표단 중에는 레닌의 형 알렉산드르와 누이 안나가 있었으며, 안나 울리야노바-옐리자로바는 그를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고 불렀다.
19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풍자작가인 미하일 살티코프-셰드린은 『한 도시의 역사』(1870)와 『골로블료프 가문』(1880)을 통해 전제정치·관료제·농노제의 부패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귀족 출신이었으나 프랑스 유토피아 사회주의에 공감해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가담, 1848년 유배된 후 7년간 지방 관료로 일하며 러시아의 모순을 목격했고, 네크라소프 사후 《조국의 수기》 편집장으로 급진 저널리즘을 이끌었다. 레닌은 그를 '혁명적 청년들이 가장 사랑한 작가'라 불렀고, 지노비예프는 '그의 작품은 당시 어떤 혁명가 조직보다도 진정으로 차르 체제의 기초를 훼손했다'고 평가했으며, 마르크스도 그의 작품을 정치적 관심으로 정독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4–1848군부성 문서국 관리
- 1848–1855뱟카 유배, 지방 관료
- 1858–1860랴잔 부지사
- 1860–1862트베리 부지사
- 1863–1864《동시대인》 기고
- 1864–1868펜자·툴라·랴잔 재무국장
- 1868–1884《조국의 수기》 편집장
《조국의 수기》 편집과 풍자 저널리즘
1868년 살티코프-셰드린은 니콜라이 네크라소프가 개편한 잡지 《조국의 수기》에 합류해 언론 부문을 맡았다. 네크라소프가 1878년 사망한 뒤 편집을 이끌었으며, 잡지는 1884년 당국에 의해 폐간됐다. 그는 동시대의 급진적 문예 잡지를 편집하는 한편, 작품과 비평으로 농노제 폐지 뒤에도 남은 행정 부패와 농민의 무권리를 다뤘다. 1869년 발표한 「시대의 징표」와 「지방에 관한 편지」는 개혁 이후에도 절대군주정과 지주 권력이 지속된다고 비판했다. 1870년에는 가공의 도시 글루포프를 통치하는 무능하고 폭압적인 시장들의 연대기를 통해 국가 통치의 관료적 혼란과 억압을 풍자한 『한 도시의 역사』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 국가 제도에 대한 풍자로 읽혔고, 수보린은 러시아 역사를 왜곡하고 민중을 모욕한다고 비난했다. 살티코프-셰드린은 자신이 조롱한 대상은 국가 전체의 역사가 아니라 특정한 통치 상태라고 답했다.
《조국의 수기》는 검열 압력도 겪었다. 1874년부터 1879년까지 잡지는 그의 글을 이유로 18차례 제재를 받았으며, 「선의의 연설들」을 실은 1874년 5월호는 파기됐다. 「선의의 연설들」은 이후 1876년 책으로 나왔고, 그 일부 이야기는 1880년 『골로블료프 가문』으로 분리·확장됐다. 잡지가 폐간되자 그는 독자와 대화할 기회를 빼앗겼다고 썼다. 이후 작품은 《유럽 통보》와 《러시아 통보》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