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크 플루토늄 단지를 세운 내무부 공병 소장
톰스크-7 건설 현장에서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원자로가 아니라 빵 공장이었다. 그는 '내가 석공을 구해 오겠다'며 수용자 중 벽돌공을 직접 찾아 데려왔다.
체카 기병 출신의 소련 내무부 공병 소장이자 산업 건설자로, 원자폭탄 계획의 핵심 시설인 첼랴빈스크-40(마야크) 플루토늄 생산단지 건설을 지휘했다. 1947년 ITL 제859호 수용소와 공병 부대를 통합 지휘해 1948년까지 4만 5천 명의 인원으로 공업용 원자로와 방사화학 공장을 착공 3년 만에 가동시켜 1949년 최초 핵실험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크라스노야르스크-26, 톰스크-7, 두브나, 프로트비노까지 소련 핵 지도의 주요 시설을 연이어 건설했으며 사회주의노동영웅(1949)과 스탈린상(1951)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5–1936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15–1924제국군 기병 위생병 → 1917년 볼셰비키 입당 → 체카 기병대 내전 참전, 특별기병대대장
- 1925–1936발라흐나 제지공장 → 고리키 자동차공장 → 니즈니타길 자동차공장 건설 총책임자, 타길스트로이 트러스트장
- 1937–1941NKVD 콜스트로이 트러스트장, 몬체고르스크 니켈 콤비나트, 세베로니켈 ITL 국장
- 1941–1943북부전선 방어시설 건설 → 제2공병군 사령관 → 악튜빈스크 페로합금공장 건설 국장
- 1943–1946타길스트로이-타길라그 NKVD 국장, 소장 진급(1943.2)
- 1946–1950콤비나트 제7호(에스토니아) → 콤비나트 제817호 마야크(첼랴빈스크-40) 건설 국장 겸 ITL 제859호장
- 1950–1962글라프프롬스트로이 제1부국장 → 크라스노야르스크-26, 톰스크-7, 두브나, 프로트비노 건설 지휘
관련 역사 사건
타길라그 국장과 전시 군수 건설(1943~1946)
1943년 4월 차렙스키는 니즈니타길에서 내무인민위원부의 강제노동수용소인 타길라그의 소장과 타길스트로이 건설 관리국의 국장을 함께 맡았다. 두 직책을 한 사람이 겸임한 것은 이 시기 내무인민위원부 건설 체계의 전형으로, 수용자 노동력과 건설 공정이 단일한 지휘선 아래 놓였다. 그는 1946년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임무는 우랄의 철강 기지 확장이었다. 두 개의 코크스로와 제3고로가 세워졌고, 제3고로는 착공 9개월 만에 완공되어 1944년 4월 26일 가동에 들어갔다. 이 밖에 각종 공장 동과 설비, 전차 시험용 사격장도 함께 건설되었다. 그 결과 니즈니타길의 생산 능력은 코크스 두 배, 선철 3분의 1, 강철 3.6배, 압연 4배로 늘었다.
이 국면은 그가 지휘한 건설들 가운데 특징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전쟁 수행에 직결된 야금 설비를 다루면서 동시에 강제노동 수용소의 행정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전시 동원과 수용소 체계가 한 사람의 권한 안에서 결합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단지 건설기와 달리 여기서는 생산 확대의 지표가 사료에 남아 있고, 준공 시한의 단축이 곧 공적 평가의 근거가 되었다. 1945년 5월 그는 네 번째 레닌 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1월에는 '전투 공로 메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