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아그로프롬의 초대 의장
1985년 10월 고르바초프는 6개 농업 부처를 하나로 통합한 국가농공위원회를 구상하며 "몇 년 동안 이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 달 뒤 무라홉스키가 초대 의장에 임명되었으나, 반년 만에 스스로 개편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15세에 붉은 군대에 합류해 노보로시스크 방어전과 만주 작전에서 싸운 전쟁 참전자였다. 스타브로폴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후임 변경주당 제1서기(1978~1985)로 지역 농업과 산업 발전을 이끌며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오른 직후 소련 부총리 겸 국가농공위원회 초대 의장으로 발탁되어 6개 농업 관련 부처를 하나로 통합하는 대대적 행정 개편을 단행했으나, 거대 관료 기구의 비효율이 드러나 1989년 기구 폐지와 함께 퇴임했다.
경력 연표
- 1985–1989국가농공위원회 의장
관련 역사 사건
스타브로폴 당 수장: 고르바초프의 후계자
무라홉스키는 15세이던 1942년 독일군이 스타브로폴에 진격하자 퇴각하는 붉은 군대에 합류했다. 노보로시스크 방어전에서 부상을 입었고, 1945년 만주 작전에서 일본군과 싸워 「전투공로」 메달을 받았다. 1946년 입당 후 스타브로폴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콤소몰과 당 기구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65년 키슬로보츠크 시당 제1서기를 필두로 1970년 스타브로폴 시당 제1서기, 1975년 카라차이-체르케스 주당 제1서기를 역임하며 차근차근 승진했다.
1978년 12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중앙위원회 서기로 발탁되어 모스크바로 올라가자 무라홉스키가 후임으로 스타브로폴 변경주당 제1서기에 임명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신임을 보여주는 인사였다. 변경주 당수로서 무라홉스키는 농업의 전문화·집중화와 대(大)스타브로폴 운하를 통한 관개 확대를 추진했고, 네빈노미스크 「아조트」 화학단지 증설과 프리쿰스크 폴리에틸렌 공장 가동 등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1982년 곡물 및 농산물 생산 실적을 인정받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와 레닌 훈장을 받았다. 고르바초프가 1985년 서기장에 오른 직후 무라홉스키를 모스크바로 불러 올린 것은 바로 이 스타브로폴 시절의 인연과 신뢰에 기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