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나오타케

佐藤尚武
일본 일본 1882–1971 ○ 자연사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를 통보받은 마지막 주소 대사

과거의 타성으로 저항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을 속히 끝내고, 국가 멸망의 한 걸음 앞에서 그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

일본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 대사를 거쳐 1937년 외무대신이 되었으나 평화협조 노선을 고수하여 군부와 충돌, 석 달 만에 사임했다. 1942년 주소 대사로 부임해 종전 시까지 모스크바에 주재하며, 소련의 중재는 불가능하고 조속한 무조건 항복만이 나라를 구할 길이라고 도쿄에 거듭 경고했다. 1945년 8월 8일 크렘린에서 몰로토프로부터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를 통보받았다. 전후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참의원 의장을 지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모스크바에서 본 일본의 막다른 길

사토 나오타케의 주소련 대사 재임은 일본 외교가 전쟁의 현실과 희망적 관측 사이에서 갈라진 시기였다. 그는 1942년 부임 뒤 소련과의 중립을 지키는 일을 우선 과제로 삼았고, 1944년 3월 북사할린의 석유·석탄 조차권을 반환하는 의정서와 어업협약 갱신을 성사시켜 양국 관계의 급격한 악화를 늦추려 했다. 그러나 사토는 독일과 소련 사이의 별도 평화나 소련의 대일 중재에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가 1945년 여름에도 모스크바를 통해 유리한 조건의 종전을 모색하자, 그는 구체적 조건 없는 특사 파견은 실패할 것이라고 거듭 보고하고 사실상 무조건 항복에 가까운 결단을 촉구했다. 7월 20일 전보에서 그는 항전을 이어가도 국가를 구할 수 없다며 국민의 생존을 위해 저항을 끝내야 한다고 썼다. 도쿄의 지연은 그의 경고를 무력화했고, 8월 8일 모스크바에서 몰로토프가 대일 선전포고를 통보하면서 그가 지키려 한 중립의 외교적 공간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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