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키릴로비치 안티포프

Николай Кириллович Антипов
소비에트 러시아 1894–1938 ✕ 처형 · 복권 1956

스탈린의 간부 임명 기구를 움직인 통제 관료

1937년 3월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그는 트로츠키주의자·지노비예프주의자·우익파가 '독일과 일본 파시스트에게 고용된 피비린내 나는 파괴공작자-살인자 덩어리'라고 규탄했다. 넉 달 뒤 그 자신이 체포되었다.

12년 볼셰비키에 입당하여 10월 혁명 당시 페트로그라드 공장위원회 간부로 활동했고, 내전기에는 페트로그라드 체카 의장을 지냈다. 1924년 중앙위 조직배치부(오르그라스프레드) 책임자로서 스탈린의 노멘클라투라 체계 구축에 핵심 역할을 했으며, 이후 우랄·레닌그라드 지역당 서기, 체신인민위원을 거쳐 1935년 소비에트통제위원회 의장 겸 인민위원회의 부의장에 올랐다. 당-국가 통제기구의 정점에서 중앙계획 규율을 감독했으나, 1937년 6월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제명·체포되어 1938년 7월 총살되었고 1956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페트로그라드 체카 의장과 적색테러

안티포프는 1918년 8월 페트로그라드 체카 부의장으로 임명되었고, 1919년 1월에는 바르바라 야코블레바의 후임으로 의장이 되었다. 그의 임기는 적색테러의 절정기와 정확히 겹친다. 1918년 8월 30일 페트로그라드 체카 의장 모이세이 우리츠키가 암살되고 같은 날 레닌이 중상을 입자, 인민위원회는 9월 5일 공식적으로 적색테러를 선포했다. 체카는 계급적 적에 대한 대규모 인질 체포와 즉결 처형 권한을 부여받았다. 안티포프는 페트로그라드에서 이 테러 정책의 주요 집행자 중 한 명이었으며, 역사가 콘스탄틴 잘레스키는 그를 '북부 수도에서 테러의 주요 조직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지휘 아래 페트로그라드 체카는 전직 장교, 성직자, 정치적 반대자들을 포함한 수백 명을 체포·처형했다. 1919년 봄 안티포프는 카잔으로 전출되어 구베르니아 당 서기 겸 집행위원장으로 옮겼고, 체카 의장직은 후임에게 인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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