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신경외과의 창시자이자 적군 주임외과의
공습 중 대피를 거부하며 말했다. "부상자들은 숨을 수 없소. 의사의 자리는 환자 곁이오."
소비에트 신경외과의 창시자이자 대조국전쟁기 적군 주임외과의로, 네 차례 전쟁에서 야전외과를 혁신했다. 신학교를 그만두고 유리예프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러일전쟁에 자원해 부상자 후송 중 총상을 입고 게오르기 십자훈장을 받았다. 1932년 세계 최초의 중앙신경외과연구소를 모스크바에 창설하고 뇌종양 수술을 대중화했으며 구근절개술을 개발했다. 1937년부터 적군 주임외과의로서 야전의료를 지휘했고, 65세에도 전선에서 수천 건의 수술을 집도하며 페니실린 도입을 주도했다. 그의 지휘 아래 적군 의무대는 부상병 72.3%를 전선에 복귀시켰고 단 한 건의 감염병 유행도 없었다. 1944년 소련 의학아카데미 초대 총재로 취임했으며, 3차례 뇌졸중 끝에 1946년 70세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2–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04–1905러일전쟁 의무병, 부상자 후송 중 총상, 게오르기 십자훈장
- 1906–1910유리예프 대학 의학부 졸업, 박사학위, 독일·스위스 연수
- 1910–1917유리예프 대학 외과 교수, 1차대전 북서전선 적십자 외과고문, 2군 외과고문, 주임군사위생감독(1917.3–5)
- 1918–1923보로네시 대학 외과 교수, 적군 군병원·야전외과 강좌 조직, 피로고프 의학회 창립
- 1923–1937모스크바 대학·제1모스크바 의학원 외과 교수, 외과 클리닉 원장, 신경외과 병동 개설
- 1932세계 최초 중앙신경외과연구소 창설, 소장
- 1937–1946적군 주임외과의, 소련-핀란드 전쟁·대조국전쟁 야전의료 지휘, 수천 건 수술, 페니실린 도입
- 1944–1946소비에트 의학아카데미 초대 총재
관련 역사 사건
카틴 특별위원회 위원장 (1944)
1944년 1월 12일 부르덴코는 니콜라이 슈베르니크가 이끄는 독일 파시스트 침략자 만행 조사 비상국가위원회 산하에 설치된, 카틴 숲에서의 폴란드 장교 포로 학살 경위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위원회는 1943년 독일 점령군이 발견한 약 4,300구의 시신, 75명의 의사가 참여한 부검, 시신에서 나온 유물과 증언을 근거로 학살이 1941년 가을에 일어났으며 사용된 수법이 독일군이 점령지에서 쓴 것과 같다고 결론짓고, 책임을 나치 독일에 돌렸다. 위원회 문서는 뉘른베르크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었고, 부르덴코의 이름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소련 측 문서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사망자 가운데 약 2만 1천 명은 1940년 3월 5일 정치국 결정에 따라 내무인민위원부가 이미 처형한 폴란드 포로들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93년 러시아 총군사검찰청 산하 전문가 위원회는 부르덴코 위원회의 보고서를 '허위'이고 학문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정했다. 전향한 전 소련 장교 보리스 올샨스키의 1946년 관련 증언은 신빙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고, 1957년 그가 소련으로 돌아간 뒤에는 미국 측이 증언을 조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시 의료·과학 행정에 집중했던 부르덴코가 나치 만행 조사와 함께 이 사건의 공식 조사 책임을 맡았던 이력은, 1943년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싼 소련과 독일의 선전 경쟁 속에서 수행된 정치적 임무로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