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배우〉: 넵스키 훈장에 얼굴이 새겨진 소련의 국민 배우
저는 이반 뇌제의 형상을 영화만이 아니라 극장에서도 다뤄왔고, 이 형상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시나리오 개작이 올바르고 진실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산드린스키 무대와 소련 영화를 오간 배우. 예이젠시테인의 〈알렉산드르 넵스키〉와 〈이반 뇌제〉 주연으로 국가 서사시의 얼굴이 되었고, 파가넬부터 돈키호테까지 이르는 변신의 폭으로 스탈린에게서 「변신할 줄 아는 배우」라는 평을 들었다.
마린스키의 단역에서 알렉산드린스키의 간판으로
1903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마린스키 극장에서 단역과 무언극 배우로 일했다. 샬랴핀이 무대에 서던 시절의 이 극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 자신이 회고했다. 1933년 레닌그라드의 푸시킨 드라마 극장(옛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 입단해 죽기 전해인 1965년까지 이 극장의 배우로 남았다.
영화에서 이름을 알린 것은 1930년대 후반이다. 〈그란트 선장의 아이들〉(1936)의 파가넬, 〈발틱 대의원〉(1936)의 노교수 폴레자예프, 〈표트르 1세〉(1937~1938)의 알렉세이 황태자를 잇달아 연기했다. 서른셋의 나이로 일흔다섯의 폴레자예프를 연기한 변신은 그의 상표가 되었고, 1940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했으며 1950년부터 1958년까지 소련 최고소비에트 대의원을 지냈다.
넵스키와 뇌제, 국가의 얼굴
예이젠시테인의 〈알렉산드르 넵스키〉(1938)에서 공작 넵스키를 연기해 1941년 스탈린상을 받았다. 1942년 알렉산드르 넵스키 훈장이 제정될 때 도안가 텔랴트니코프는 실존 초상이 남아 있지 않은 넵스키 대신 체르카소프의 옆얼굴을 훈장에 새겼다. 배우의 얼굴이 국가 훈장의 도안이 된 것이다.
이어 예이젠시테인의 〈이반 뇌제〉에서 차르 이반을 연기해 1편(1944)으로 1946년 스탈린상을 받았으나, 2편은 1946년 9월 당 중앙위원회 결정으로 개봉이 금지되었다. 1947년 2월 26일 예이젠시테인과 함께 크렘린으로 불려가 스탈린·몰로토프·즈다노프와 영화의 개작을 논의했고, 그 기록이 《이반 뇌제》에 관한 크렘린 대담으로 남아 있다. 같은 날짜로 소련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개작은 예이젠시테인의 죽음으로 무산되었고 2편은 1958년에야 공개되었다. 무대에서도 1945년부터 푸시킨 극장의 〈대군주〉에서 같은 이반을 연기했다.
돈키호테와 만년
전후에는 〈봄〉(1947)의 영화감독 역, 〈무소륵스키〉와 〈알렉산드르 포포프〉 같은 전기 영화들로 1950년과 1951년에도 스탈린상을 받아 수상은 모두 다섯 차례에 이르렀다. 1953년 회고록 『소비에트 배우의 수기』를 냈고, 코진체프의 〈돈키호테〉(1957)에서 늙은 기사를 연기해 만년의 대표작으로 남겼다. 〈모든 것은 인민에게 남는다〉(1963)의 물리학자 드로닌 역으로 1964년 레닌상을 받았다.
폐기종과 심부전으로 1966년 9월 14일 레닌그라드에서 죽었다. 넵스키 훈장의 옆얼굴과 함께, 「변신할 줄 아는 것이 배우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던 시대의 기준을 몸으로 보여 준 배우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