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안토노비치 돌레잘

Николай Антонович Доллежаль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체코 1899–2000 ○ 자연사

소련 원자로 설계의 총설계사

1946년 1월 쿠르차토프가 그를 처음 만나 "최단기간 내에 산업용 우라늄 '보일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돌레잘은 이 한마디에 평생을 반응로 설계에 바쳤다.

체코계 소련 기술자로, 핵무기·원자력발전·함정추진 원자로를 모두 설계한 원자로 총설계사였다. 1946년 쿠르차토프와의 만남 이후 플루토늄 생산로 'A'를 설계해 1949년 소련 첫 핵실험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했고, 1954년 세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오브닌스크 AM-1 원자로를 완성했다. NIKIET을 34년간 이끌며 VVER, RBMK, 함정용 원자로 등 소련의 모든 주요 원자로 계통의 원형을 개발했으나, 체르노빌 참사 이후 RBMK 설계 결함에 대한 책임 논란 속에 1986년 연구소장직에서 물러났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RBMK와 체르노빌: 설계자와 책임 논쟁

돌레잘의 NIKIET는 쿠르차토프 연구소와 함께 RBMK(대출력 수로형 원자로)를 공동 개발했다.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과 발전을 겸하는 이중목적 설계에서 출발해 뒤에는 순수 발전용으로 바뀐 수로형·수흑연 원자로 계통으로, 체르노빌을 비롯해 레닌그라드·쿠르스크·스몰렌스크·이그날리나 원전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돌레잘 자신은 RBMK 원전을 소련의 인구 밀집 지역에 배치하는 데 반대했다. 그는 이 점을 담은 내부 보고서를 여러 차례 올렸고, 1979년에는 잡지 『콤무니스트』에 공개 기고하여 인구 밀집한 유럽 지역에서 RBMK 원전 건설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RBMK를 사실상 '발명한' 쿠르차토프 연구소의 알렉산드로프 원장은 『평화와 사회주의의 문제들』에서 그를 반박하며 이 경고를 무력화했다.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는 공식 개념이 우세했고, 돌레잘은 침묵한 채 RBMK의 총설계사로 남았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참사 이후 이 설계 결함 논쟁은 처벌 문제로 번졌다. 반세기 전 '프롬파르티야' 사건에 이어 돌레잘은 두 번째로 수사 대상이 되었다. 원자로의 구조적 결함에 관한 형사 사건이 따로 분리되었으나 소련 검찰이 종결했고, 1991년 1월 새로 제기된 사건도 소련 해체 후 다시 종결되어 유죄 판결은 없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고 보고서에는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 책임을 둘러싼 논쟁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1991년 소련 최고회의 위원회는 RBMK-1000의 설계 미비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고, 유죄 판결을 받은 체르노빌 부수석기사 댜틀로프는 자신의 책에서 설계 결함과 함께 과학 지도자와 총설계사를 비난했다. 반면 재판부는 사고 책임이 발전소 운전 요원에게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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