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예브그라포비치 페도세예프

Николай Евграфович Федосеев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71–1898 ✕ 자살

볼가 지역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서클을 조직한 러시아 혁명가

“페도세예프는 그를 아는 모든 이의 비상한 호감을 받았으며, 자신의 대의에 전적으로 헌신한 구시대 혁명가의 전형이었다” — 레닌, 1922년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선구자 니콜라이 페도세예프는 1888년 카잔에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서클을 조직해 젊은 레닌과 고리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소개한 인물이다. 수감 중에도 레닌과 이론 서신을 교환했으며, 농노제 붕괴의 경제적 원인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저작과 프롤레타리아 정당 강령 초안을 집필했다. 나로드니키 이론가 미하일롭스키와의 논쟁은 초기 마르크스주의-나로드니키 논쟁의 장을 열었고, 그의 강령은 레닌이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라고 평했지만, 1898년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동료의 중상에 시달리다 27세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노동자 조직과 프롤레타리아 투쟁 강령

1892년 9월 블라디미르주 니콜스코예의 모로조프 공장 파업에서 페도세예프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고,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투쟁 강령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타타르 백과사전은 이를 그가 노동자 대중의 조직자로 나선 첫 사례로 기록한다. 그는 9월 10일 체포되어 솔비체고츠크에서 3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레닌은 페도세예프와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밝히면서, 그와의 서신에서 마르크스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세계관의 문제를 논의했고, 그가 볼가 지역과 중앙 러시아 일부에서 마르크스주의 확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레닌의 증언은 파업 조직 활동의 세부사항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페도세예프가 노동자 조직 활동과 이론적 논쟁을 함께 수행한 초기 마르크스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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