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우크라이나·러시아 3개국 보안기관을 두루 거친 KGB 우크라이나 공화국 KGB의 마지막 의장
그는 회고록 제목처럼 소련·우크라이나·러시아 3개국 보안기관에서 근무했다. 1994년 10월 사태 관련자 사면을 막으라는 옐친의 요구를 거부하고 “러시아 장교로서 국민에게 한 맹세를 지켰다”며 사임했다.
소련 국가보안기관에서 경력을 쌓아 우크라이나 공화국 KGB의 마지막 의장(1987–1991)을 지낸 인물이다. KGB 제5총국(이념적 방첩 및 반체제 탄압)에서 오래 근무하며 민족주의 감시와 반소 활동 단속을 전담하다가, 페레스트로이카기 우크라이나 공화국 보안기관 수장으로 발탁되었다. 소련 해체 후에는 잠시 독립 우크라이나의 국가안보국(SBU)을 이끌었고, 이후 러시아로 옮겨 보안장관과 연방방첩국(FSK) 국장을 역임하며 3개국 보안기관에서 근무한 특이한 이력을 남겼다. 러시아 보안장관 시절 1993년 10월 사태 수감자 사면 문제로 옐친 대통령과 갈등하다 사임하였으며, 회고록 『3개국의 특별기관에서』를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59–1963케메로보 검찰청 수사관
- 1963–1974케메로보주 KGB, 작전요원 → 제5과 부과장
- 1974–1983KGB 제5총국 제2과(민족주의 담당) 과장
- 1983–1984KGB 제5총국 부총국장
- 1984–1987KGB 사무국 제1부국장 겸 당직근무국장
- 1987–1991우크라이나 공화국 KGB 의장, KGB Collegium 위원
- 1991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SNBU) 의장 대행
- 1992–1993러시아 보안부 제1차관
- 1993러시아 보안장관
- 1993–1994러시아 연방방첩국(FSK) 국장
말기 우크라이나 KGB의 보고와 정치 감시
1987년 우크라이나 공화국 KGB 의장에 취임한 뒤 골루시코는 소련 공화국의 정치 지도부에 올라가는 정보 보고 체계의 책임자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KGB는 외국인과 해외 우크라이나인 단체의 동향뿐 아니라 반소 전단·낙서, 종교 공동체와 비공식 청년문화, 노동 현장의 집단 결근 및 파업 움직임을 추적해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는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었다. 예컨대 당국은 파업을 ‘출근 거부’로 표현하고,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 요구가 독립 노조 결성이나 정치적 요구로 번지지 않도록 대응했다. 보안기관은 이처럼 사회적 불만을 감시하는 동시에 정치적 조직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1991년 8월 쿠데타 전후의 보고는 이러한 정보 생산의 한계도 드러낸다. 2020년 우크라이나 KGB 문서들을 검토한 보도에 따르면, 골루시코가 서명한 상황 보고서 두 건은 이틀 간격으로 우크라이나 최고회의 의장 레오니드 크라프추크에게 전달됐다. 기사는 보고 내용에서 당시 KGB의 분석 오류와 관료적 편향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는 기관장의 책임 아래 생산된 정보가 지도부의 판단에 제공됐지만, 현장의 사회적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골루시코는 1991년 9월까지 공화국 KGB 의장을 지냈고, 이후 11월까지 우크라이나 국가안보위원회 임시 의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