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쿠즈네초프 (첩보원)

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Кузнецов
소련 러시아 1911–1944 ✕ UPA와 교전 중 전사

나치 점령지 한복판에서 독일 장교로 위장해 고위 관리들을 제거한 소련의 전설적 첩보원

1944년 3월, 보라틴 마을에서 UPA 대원들에게 포위되자 쿠즈네초프는 수류탄으로 자신과 적들을 함께 폭사했다.

소련의 전설적 첩보원이자 파르티잔. 독일어 6개 방언을 구사하는 언어 천재로, 독일군 중위 파울 지베르트로 위장하여 나치 점령 우크라이나의 수도 로브노에서 활동하며 6명 이상의 고위 독일 관리들을 직접 제거했다. 쿠르스크 전투를 앞두고 독일군의 대규모 전차 공격 계획을 최초로 입수했으며, 테헤란 회담에서 연합국 수뇌부를 겨냥한 '멀리뛰기 작전'을 사전에 탐지했다. 1944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과의 교전에서 사망했고, 사후 소련 영웅 칭호를 받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주요 제거 작전

쿠즈네초프가 로브노와 리보프에서 수행한 제거 작전은 그를 소련 첩보의 전설로 만든 핵심 임무였다.

1943년 9월 20일, 쿠즈네초프는 로브노 시내에서 우크라이나 국가판무부의 재정 담당 제국고문관 한스 겔(Hans Gehl)과 롭노 지역 감찰관 아돌프 빈터(Adolf Winter)를 권총으로 사살하며 첫 제거 작전을 성공시켰다. 열흘 후인 9월 30일에는 국가판무관 에리히 코흐의 상임대리 파울 다르겔(Paul Dargel)을 대전차 수류탄으로 공격했다. 다르겔은 중상을 입고 양다리를 잃었으나 생존했고, 쿠즈네초프 역시 파편에 어깨를 다쳤다.

1943년 11월은 가장 격렬한 달이었다. 11월 15일, 쿠즈네초프와 동료들은 '동방대대' 사령관 막스 일겐(Max Ilgen) 장군을 로브노 자택에서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작전 중 우연히 마주친 코흐의 전속 운전병 파울 그라나우(Paul Granau)도 함께 체포했으며, 두 사람 모두 심문 후 처형되었다. 바로 다음 날인 11월 16일, 쿠즈네초프는 로브노 법원 청사에서 우크라이나 국가판무부 법무국장 알프레트 풍크(Alfred Funk) 상급돌격대지도자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1944년 2월, 리보프로 활동 무대를 옮긴 쿠즈네초프는 갈리치아 관구 부총독 오토 바우어(Otto Bauer)와 총독부 청장 하인리히 슈나이더(Heinrich Schneider)를 사살했다. 리보프 탈출 과정에서는 헌병대 소령 칸터(Kanter)를 검문소에서 사살하기도 했다.

그의 최우선 목표였던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 에리히 코흐에 대한 제거 시도는 두 차례(1943년 4월 히틀러 생일 열병식 및 6월 개인 접견) 모두 코흐의 삼엄한 경호로 인해 실행 직전에 포기되었다. 코흐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1986년 폴란드 교도소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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