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베리아 유전으로 소련 석유생산 정점을 이끈 장관
1971년 3월, '5개년 계획의 석유 채굴 과제 수행과 높은 기술·경제 지표 달성에 대한 탁월한 공로'로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마이코프 출신의 석유 기술자로, 타타르·페름 유전에서 경력을 쌓아 소련 석유공업 장관(1977~1985)까지 오른 인물. 발렌틴 샤신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장관직을 이어받아, 브레즈네프 후기 서시베리아 유전의 집중 개발을 지휘하며 소련을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로 이끌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CPSU 중앙위원 후보위원을 지냈고, 고르바초프 집권 직전인 1985년 2월 퇴임했다. 사회주의노동영웅(1971) 수훈자이며, 퇴임 후 모스크바에서 여생을 보냈다.
경력 연표
- 1951그로즈니 석유연구소 졸업, 광산기사 자격 취득
- 1951–1956타트네프티 계통 공장장·주임기사·부책임자
- 1956–1960타트네프티 산하 아즈나카옙스크네프티 국장
- 1960–1961타트네프티 산하 부굴마네프티 국장
- 1961–1972페름 소브나르호스 석유공업국장 → 페름네프티 생산합체 총책임자
- 1972–1977소련 석유공업 제1차관
- 1977–1985소련 석유공업 장관
관련 역사 사건
서시베리아 유전 개발과 석유공업 재편
1977년 4월 발렌틴 샤신의 후임으로 소련 석유공업 장관에 취임한 말체프는 즉시 서시베리아 유전 지대의 조직적 재편에 착수했다. 1977년 9월 15일, 말체프는 장관 명령을 통해 서시베리아 지역에 '니즈네바르톱스크네프테가스', '수르구트네프테가스', '유간스크네프테가스', '우라이네프테가스'의 4개 생산합체를 신설했다. 1981년에는 '노야브리스크네프테가스'가 추가로 설립되어, 서시베리아 유전의 조직·기술적 지휘 체계가 대폭 정비되었다.
말체프의 장관 재임기 서시베리아의 시추 규모는 1975년 280만 미터에서 1980년 960만 미터로 급증했다. 이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타트네프티', '바시네프티', '쿠이비셰프네프티', '벨로루스네프티', '우크르네프티', '사라토프네프테가스', '크라스노다르네프테가스', '그로즈네프티' 등 전국 각지의 생산합체들이 교대조 비행(вахтово-экспедиционный) 방식으로 서시베리아 시추에 동원되었다. 말체프는 '비행 교대조'를 위한 Tu-154 항공기 구매, 전용 활주로 정비, 지역 공항 재건 등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 확보에도 주력했다.
그러나 급속한 확장의 대가는 점차 명확해졌다. 연간 증산량은 1980년 2,840만 톤에서 1981년 2,080만 톤, 1982년 1,800만 톤, 1983년 1,670만 톤, 1984년 710만 톤으로 하락했다. 1984년에는 서시베리아에서 계획 대비 300만 톤의 미달이 발생했고, 1985년에는 마침내 서시베리아 전체 산유량이 전년 대비 1,200만 톤 감소하며 소련 전체 산유량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1985년 2월, 산유량 감소의 책임을 지고 만 57세의 나이로 장관직에서 해임되어 사실상 강제 퇴임했다.
그럼에도 말체프의 8년 재임기는 소련이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공고히 한 시기였으며, 그가 구축한 생산합체 체제는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석유 산업의 골격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