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고통을 노래하고 《동시대인》을 혁명적 문학의 중심으로 만든 시인·출판인
"그대는 시인이 아닐지 몰라도, 시민이어야만 한다." — 네크라소프가 시 「시인과 시민」에서 선언한, 러시아 문학의 사회적 사명을 규정한 한 구절.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중심을 이룬 시인이자 출판인으로, 푸시킨이 창간한 《동시대인》을 인수해 벨린스키·체르니솁스키·도브롤류보프의 비평과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투르게네프의 소설이 교차하는 당대 최고의 문예지로 키웠다. 농노제 아래 신음하는 농민을 그들의 언어로 노래한 그의 시는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의 정경이 되었고, 대표작 『누가 러시아에서 행복하게 사는가』는 러시아 농촌의 모순을 전면적으로 파헤친 서사시로 남았다. 1878년 장례식에 4천 명이 운집해 정치 집회로 변모했으며, 도스토옙스키가 '푸시킨 이후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추도하자 젊은 혁명가들은 '아니, 더 위대하다!'고 외쳤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39–1841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철학부 청강생
- 1840첫 시집 『꿈과 소리』 출간
- 1840–1846《조국의 수기》 및 여러 잡지에 기고, 희곡·보드빌 집필
- 1845–1846알마나크 『페테르부르크 생리학』·『페테르부르크 선집』 편집·출판 — 도스토옙스키 데뷔작 수록
- 1847–1866《동시대인》(Sovremennik) 발행인 겸 편집자
- 1856대표 시집 『N. 네크라소프 시선』 출간 — 즉시 매진, 전국적 명성
- 1868–1878《조국의 수기》(Otechestvennye Zapiski) 발행인 겸 편집자
- 1873–1876대표작 『누가 러시아에서 행복하게 사는가』 집필
《동시대인》의 편집과 검열 아래 문예 정치
네크라소프와 이반 파나예프는 1847년 1월 《동시대인》의 편집을 맡았다. 네크라소프는 잡지의 재정적 기반을 회복하고 이반 투르게네프, 이반 곤차로프, 알렉산드르 게르첸, 니콜라이 오가료프 등의 기고를 모았다. 1850년대에는 주요 필자들의 신작을 이 잡지에 독점 게재하기로 합의했고, 1852~1862년은 잡지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벨린스키 사후에는 체르니솁스키와 도브롤류보프가 비평의 중심이 되었으며, 잡지는 농노 해방 문제를 다루고 혁명적 민주주의의 논쟁 무대가 되었다. 1858년부터 자유주의·보수주의 언론과 논쟁했고, 1859~1861년에는 게르첸의 《종》과 러시아 민주주의의 목표를 두고 맞섰다.
이 편집 활동은 검열의 변화와 잡지 내부의 노선 변화 속에서 전개되었다. 1847~1855년 정부는 1848년 유럽 혁명 이후 언론 통제를 강화했다. 1855년 이후 국내 정책의 자유화와 대개혁 준비가 이어졌지만,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화재 뒤 잡지는 발행 정지를 당했다. 체르니솁스키 체제의 시기는 1862년 6월 정지로 끝났고, 1863년 1월 네크라소프는 살티코프셰드린 등이 참여한 편집진으로 발행을 재개했다. 잡지는 1866년 5월까지 발행되었으며, 알렉산드르 2세 암살 시도 뒤 당국의 강경 대응으로 폐간되었다. 최근 잡지 전권의 주제 분석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논의가 검열 시기와 편집 방침에 따라 문예 담론과 결합하는 양상이 달랐음을 보여주지만, 저자들은 분석 결과가 가설을 부분적으로만 뒷받침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