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저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범
인생은 단 한 번 주어진다. 죽을 때 '내 모든 삶과 힘을 인류 해방 투쟁이라는 가장 숭고한 대의에 바쳤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살라.
13세에 볼셰비키 활동가가 되고 코톱스키 여단의 붉은군대 기병으로 복무했던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는, 25세에 강직성 척추염으로 시력과 보행 능력을 잃은 후 자서전적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1932~1934)를 집필했다. 받아쓰기와 필사틀로 완성된 이 작품의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은 소련·중국·조선 공산주의자 세대의 도덕적 전범이 되었다. 3,640만 부 판매로 러시아어 최다 판매 도서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이 소설로 그는 1935년 레닌 훈장을 받았고, 이듬해 32세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문학·예술
- 1924– 사회운동·조직 · 소련공산당·볼셰비키
경력 연표
- 1917셰페톱카 볼셰비키 지하운동 연락원
- 1919콤소몰 가입 및 붉은군대 자원입대, 코톱스키 기병여단 복무
- 1921–1923키예프 철도공장 전기공·콤소몰 서기
- 1924당 가입, 베레즈디프·이자슬라프 콤소몰 지구위원회 서기
- 1930–1934시력·보행 상실 상태에서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집필
- 1935레닌 훈장 수훈
- 1936『폭풍 속에서 태어난 사람들』 집필 착수, 완성 전 사망
관련 역사 사건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집필과 수용
오스트롭스키의 소설 집필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육체적 조건에서 시작되었다. 1930년 말, 이미 거의 실명하고 거동이 어려웠던 그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집필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썼으나 글줄이 겹쳐 판독할 수 없게 되자, 종이 상자에 줄 간격만큼 구멍을 뚫은 필사틀(트라파레트)을 고안해 그 위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나중에는 오른팔마저 마비되어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구절 단위로 받아쓰기를 하게 되었다. 원고 필사에는 모두 19명의 '자원 봉사 비서'들이 참여했고, 러시아국립문학예술문서보관소(RGALI)에 남은 원고 사본에서 그들의 필적이 확인된다. 1931년 한 해 동안 제1부를 완성했고, 제2부는 전적으로 받아쓰기로 1932년 중반까지 마쳤다.
출판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질서와 청년』(Молодая гвардия) 잡지에 보낸 원고는 '등장인물의 유형이 비현실적이다'라는 혹평을 받았으나, 오스트롭스키가 재심을 요구하고 당 기관의 지시가 내려진 뒤에야 수용되었다. 그 뒤 편집부가 원고를 대폭 손질해, 잡지 연재본(1932)과 1936년 단행본에서는 저자가 상처 입은 영웅의 고통과 아내와의 파탄을 솔직하게 그린 대목들이 삭제되거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규범에 맞게 다듬어졌다. 오스트롭스키는 출간 소식을 듣고 '책이 나왔다는 것은 곧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이제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고 썼다.
그의 존재를 전국에 알린 계기는 1935년 『프라우다』에 실린 미하일 콜초프의 르포 '용기'(Мужество)였다. 이후 오스트롭스키는 레닌 훈장을 받았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소치에, 모스크바 당국은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집을 마련해 주었다. 1936년 국방인민위원부는 그에게 명예 여단정치위원 계급을 수여했고, 그가 늘 입고 다니던 제복 차림의 사진이 대표 이미지로 남았다. 소설은 1918~1986년 소련 문예물 가운데 가장 많이 출간된 작품이 되어 536판 3,641만 6천 부가 찍혔고, 소련 붕괴 직전까지 75개 언어로 5,385만여 부가 발행되었다.
소설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었다. 특히 중국에서 파벨 코르차긴은 청년 세대의 도덕적 전범으로 널리 읽혔고, 오늘날까지도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힐 정도다. 연구자 고 고시노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소련 영화(1942, 1957)·연환화(1972)·일본 만화(1975)·중국 TV 드라마(1999) 등 다섯 차례 각색을 통해 수용되었으며, 독자들은 오히려 '부르주아적'이라 부정적으로 그려진 토냐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깊이 공감했다. 반면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이 소설이 학교 교과에서 빠지고 대량으로 폐지되어 갔으나, 2023년 러시아 교육부가 교과 과정에 다시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한 소설의 운명은 그 자체로 20세기 사회주의 문화의 부침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