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아니시모비치 셸로코프

Николай Анисимович Щёлоков
소련 러시아 1910–1984 ✕ 권총 자살

16년 MVD 수장, 브레즈네프 경찰국가의 설계사

1971년, 솔제니친 추방을 논의하는 폴리트뷰로에 「솔제니친 문제에 관하여」라는 메모를 보내 『암 병동』 출판과 모스크바 아파트 제공을 제안했다. 기각됐지만 KGB도 아니고 내무장관이 반체제 작가를 위해 움직인 장면은 브레즈네프기에 둘도 없다.

브레즈네프의 드네프르파트전 동지로 소비에트 사상 최장 16년간 내무장관을 지냈다. 경찰관 봉급을 대폭 올리고 전용 주택 10% 할당, 신규 경찰학교와 소비에트 최초의 내무아카데미를 세워 밑바닥 직업이던 민병대를 국가 기관으로 끌어올렸다. 로스트로포비치·비슈넵스카야와 교류하고 솔제니친 추방을 막으려 폴리트뷰로에 탄원서를 냈으며, 니콜라이 2세 유해 수색을 처음 지시한 소비에트 고위 관료이기도 했다. 안드로포프의 후계 구도 속에서 부패 혐의로 모든 직위와 훈장을 박탈당하고 권총 자살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몰락: 부패 수사와 자살

브레즈네프가 1982년 11월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셸로코프는 내무장관에서 해임되고 국방부 총감찰단으로 전출되었다. 새 내무장관 비탈리 페도르추크의 지시로 MVD 전면 감사가 실시되자 방대한 규모의 사적 유용이 드러났다. 외환 밀수 사건의 증거물로 압수된 골동품 24만 8천 루블 상당을 셸로코프의 관사로 옮겨 'MVD 박물관 소장품'으로 위장했고, 레닌 영묘와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한 것으로 서류를 꾸며 매년 수만 루블 상당의 생화를 지인 아파트로 배달시켰다. 친척들이 살던 아파트 9채를 '특수시설'로 위장해 유지비 6만 루블을 국고에 떠넘겼으며, 수입품 면세점을 개설해 가족이 연 5~7만 루블 규모의 귀중품을 쓸어갔다.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2부작 다큐멘터리 '인생의 페이지들'을 MVD 예산 5만 루블로 제작해 아무도 보지 않은 채 아카이브에 묻어두었다.

이 수사의 배후에는 KGB 의장 유리 안드로포프가 있었다. 1980년 12월 지하철 '즈다놉스카야' 역에서 벌어진 KGB 소령 살해 사건(술 취한 KGB 간부를 체포한 경찰관들이 그의 고급 양주와 음식을 탐내다 시비 끝에 살해한 사건) 이후 두 기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다. 안드로포프는 이 사건을 MVD 공격의 지렛대로 삼았고, 브레즈네프 사후에는 바로 보복에 나섰다.

1983년 2월, 아내 스베틀라나가 자살했다. 6월에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되었고, 1984년 11월에는 대장 계급이 박탈되었다. 12월 7일 당에서 제명되고, 12월 12일 전투 공훈장을 제외한 모든 훈장과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가 취소되었다. 셸로코프는 체르넨코에게 "법률을 위반한 적도, 국가 재산을 착복한 적도 없다"고 호소하는 편지를 썼고, "죽은 자에게서 훈장을 떼지 않는다"는 메모를 남겼다. 1984년 12월 13일, 훈장을 모두 단 정복을 입은 채 세레브랴니 보르의 다차에서 자신의 수집용 사냥총으로 머리를 쏘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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