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수탸긴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Сутяг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23–1986 ○ 자연사

미그 앨리의 최고 득점 소련 에이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한국 상공에서 149회 출격해 22승을 기록했다.

니콜라이 수탸긴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소련 전투기 조종사로, 제트전투기 시대의 대표적 에이스가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그-15를 몰며 149회 출격과 66회 공중전을 기록했고, 소련 자료 기준 22대의 항공기를 격추해 소련군 조종사단의 전투 성과를 상징했다. 그의 전과는 냉전 초기 소련이 조선 상공에 비밀리에 개입한 현실과, 공중전의 승리 기록이 자료와 교전 당사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긴장을 함께 보여 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베트남 항공 군사고문과 말년의 직책

한국전쟁 이후 수탸긴의 경력은 전투기 조종사의 경험을 교육과 군사 원조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1956년 공군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는 훈련 항공연대 지휘를 맡았고, 1961년부터 1962년까지 카친 고등군사항공학교에서 비행훈련 담당 부교장을 지냈다. 1964년 총참모부 군사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하르키우 고등항공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어 조종사 양성 체계를 이끌었다.

1970년 10월, 그는 소련군 총참모부 제10총국 관할로 배치되었고 이 경로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베트남민주공화국 주재 항공 담당 수석 군사고문으로 파견되었다. 베트남전쟁기 미국 항공 전력에 맞서는 베트남 항공 조직을 돕는 임무였다. 이 직책은 참전국이 아닌 국가의 군사 원조 임무라는 점에서, 그리고 대외 군사 지원이 총참모부의 전용 부서를 통해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한국전쟁에서 경험한 비밀 파견 구조와 성격을 달리한다.

1971년 10월 귀환 후 그는 독일에 주둔한 소련군 소속 제16공군 부사령관 겸 군사평의회 위원으로서 방공을 담당했고, 1967년 항공 소장 진급과 1971년 소련 공훈군사조종사 칭호를 받았다. 1978년 8월 전역한 그는 키에프에 살면서 수리기술·토지개량 연구소의 민방위 참모장으로 일하다 1986년 11월 12일 사망해 키에프 바이코베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고향 스마기노 마을에는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 있고, 니즈니노브고로드에는 2022년 10월 14일 동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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