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트딘 아크라모비치 무히트디노프

Nuritdin Akramovich Muhitdinov
소련 우즈베키스탄 1917–2008 ↓ 중앙직 사임 1961

중앙아시아 출신 첫 프레지디움 위원, 민족 정책 실무자

1956년 10월 타슈켄트 제1차 우즈베크 지식인대회에서 소련 최초로 스탈린 시기 대량 탄압의 실상과 피해자 이름을 공개석상에서 밝혔다. 흐루쇼프의 '비밀연설'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우즈베크 농민 가정 출신으로, 통신으로 협동조합대학을 졸업하고 붉은군대에서 정치·무선정찰 장교로 복무하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다. 전후 우즈베키스탄 당에서 급속히 승진해 1955년 우즈베크 당 제1서기가 되었고, 1957년 중앙아시아 출신 최초로 CPSU 프레지디움 정위원 겸 중앙위 서기에 올랐다. 흐루쇼프 해빙기 동안 우즈베크 내 대규모 정치 재활, 강제이주 민족 귀환, 타슈켄트 핵물리연구소 설립을 주도하며 민족정책을 현장에서 실행했다. 1961년 흐루쇼프와의 정책적 이견으로 중앙직을 떠난 뒤 시리아 대사 등을 지내고 90세로 사망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우즈베키스탄 해빙: 대규모 복권과 민족 귀환

무히트디노프가 우즈베크 당 제1서기로 재임한 1956년은 해빙기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극적으로 전개된 해였다. 1956년 한 해에만 우즈베키스탄에서 약 4만 명이 무고하게 탄압받았던 사실이 인정되어 복권되었다. 같은 해 10월 10~14일 타슈켄트에서 열린 제1차 우즈베크 지식인대회에서 무히트디노프는 소련 전역을 통틀어 처음으로 스탈린 시기 대량 탄압의 실상을 공개석상에서 밝히고 억울한 피해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흐루쇼프의 '비밀연설'이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대회에서는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작가·시인들과 함께 식민지 정복의 역사, 민족 간 갈등, 망각된 문화유산 등 이전에는 금기였던 주제들이 토론되었다. 무히트디노프의 발의로 1956년 가을 CPSU 간부회는 1943~44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캅카스 민족들(발카르인, 카라차이인, 인구시인, 체첸인)의 귀환을 결정했고, 1957년 이들의 대규모 귀향이 이루어졌다. 타슈켄트 핵물리연구소 설립과 과학아카데미 재건도 같은 시기 그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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