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뒤 반란과 포그롬으로 돌아선 우크라이나 아타만
러시아 제국군의 하급 장교로 1918년 헤트만에 맞선 봉기에 참여해 헤르손 지방의 아타만이 되었고, 디렉토리아의 지휘를 받다가 1919년 2월 부대를 이끌고 소비에트군에 합류했다. 3월 헤르손과 니콜라예프를 점령하고 4월 6일 프랑스군과 그리스군이 철수하는 오데사에 입성해 남부의 연합국 개입을 끝냈다. 그러나 5월 7일 「우니베르살」을 발표하고 곡물 징발과 외지인 관료를 겨눠 소비에트 권력에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의 부대는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옐리사베트흐라드에서 유대인 1,500명 이상을 학살하는 등 봉기 중 수십 건의 포그롬을 저질렀다. 봉기가 5월 말 진압된 뒤 마흐노와의 연합을 꾀했으나, 7월 27일 센토베 마을의 회담에서 마흐노 측에 사살되었다. 같은 이름의 사회주의 정치인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출생연도는 자료마다 달라 확정하지 않았다.
관련 역사 사건
혁명과 독립전쟁
반헤트만 부대에서 디렉토리아와 적군을 거쳐 1919년 5월 반소비에트 봉기를 일으켰다. 그의 부대는 반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다. 7월 마흐노 측과의 충돌에서 살해됐다. 동명의 사회주의 정치인과 다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