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크 다닐로비치 칼루긴

Олег Данилович Калугин
소련 러시아 1934– → 망명 · 미국 시민

KGB 최연소 장군이자 최고위 망명 비판자

"나는 미국인들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7개월을 이곳에서 보낸 지금, 공산주의 체제가 여러분의 체제보다 낫다는 확신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 195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위장한 24세 KGB 장교가 《뉴스위크》에.

KGB 최연소 소장으로 대외방첩국(K국)을 이끌며 냉전기 대미 첩보전을 지휘했다. 1980년대 말 체제 개혁파로 전향하여 KGB의 부패를 공개 비판했고, 1991년 쿠데타에서 옐친을 지지한 뒤 미국에 망명해 회고록으로 기관 내부를 폭로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KGB 개혁과 공개 비판

칼루긴의 체제 개혁파 전향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를 통해 고르바초프에게 서한을 전달하여 KGB의 탈정치화·탈당화, 정치사찰 체계의 해체, 의회 보고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제안했다. 이 서한으로 그는 모스크바로 재전보되었으나 사실상 좌천이었다.

1990년 6월 16일, 칼루긴은 민주강령파 전당대회에서 KGB를 '스탈린주의 국내 정치경찰'로 규정하는 폭로 연설을 했다. TV 프로그램 《브즈글랴드》 출연과 연이은 언론 인터뷰에서 KGB의 부패, 고위층 비호, 일반 시민 탄압을 공개 비판했다. KGB는 그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비방'으로 규정했고, 6월 29일 고르바초프 대통령령으로 그의 훈장·계급·연금이 박탈되었다.

그러나 칼루긴은 크라스노다르 지역구 인민대표 선거에 출마해 57%를 득표하여 당선되었고, 최고회의 안에서도 KGB 개혁을 계속 주장했다. 1991년 8월 쿠데타 당일, 크류치코프 KGB 의장이 주도한 쿠데타를 옛 동료로부터 사전에 제보받은 그는 러시아 백악관으로 가 군중을 결집시키고 옐친의 대중 연설을 이끌어냈다. 쿠데타 실패 후 바카틴 신임 KGB 의장의 무보수 고문이 되어 '정치 기능도 비밀 독극물 연구소도 없는' KGB를 구상했으나, 바카틴이 1991년 11월 해임되며 개혁은 미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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