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크 알렉산드로비치 트로야놉스키

Олег Александрович Трояновский
소련 러시아 1919–2003 ○ 자연사

스탈린의 통역에서 유엔 대사까지, 냉전 위기를 재치로 버텨낸 소련 외교관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트로야놉스키가 무심히 던진 '죽는 것보다 붉은 게 낫군'이라는 한마디에, 안보리 회의장은 긴장이 풀려 웃음이 터졌다.

올레크 트로야놉스키는 스탈린의 통역에서 출발해 흐루쇼프의 외교 보좌관, 주일 대사, 유엔 주재 소련 상임대표, 주중 대사를 역임한 소련의 외교관이다. 초대 주미 소련 대사의 아들로 워싱턴에서 성장한 독특한 배경을 지녔으며, 10년간의 유엔 대표 재임 중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KAL 007기 격추라는 냉전의 최대 위기에서 냉철하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서방 외교가들의 존중을 얻었다. 유엔 대표직은 야코프 말리크의 후임이자 고르바초프 개혁 이전까지 소련의 대서방 외교 연속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흐루쇼프의 외교 보좌관

1958년부터 1967년까지 트로야놉스키는 불가닌, 흐루쇼프, 코시긴 3대 각료회의 의장의 외교 보좌관으로 일하며 소련 외교 정책의 최전선에 섰다. 이 시기 그의 가장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1959년 흐루쇼프의 미국 방문을 준비하고 수행한 일이었다. 방문 후 흐루쇼프의 구술을 바탕으로 공동 집필한 『미국과 대면하여』(Лицом к лицу с Америкой)는 소련 지도부의 대미 인식을 생생히 전하는 기록으로, 1960년 레닌상을 수상했다.

트로야놉스키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도 흐루쇼프의 곁에서 핵전쟁 직전까지 간 초강대국 간 대치의 내막을 지켜보았다. 냉전 종식 후 공개된 회고와 인터뷰에서 그는 흐루쇼프가 쿠바 배치를 결정한 동기, 존 F. 케네디와의 서신 교환 과정, 그리고 위기가 해소된 후 내부적으로 평가된 교훈을 증언했다. 그는 또한 1956년 흐루쇼프와 불가닌, 투폴레프, 쿠르차토프의 영국 방문 시 통역을 맡아 소련 지도부가 서방과 처음으로 고위급 접촉을 가진 자리에 배석했다.

스탈린, 몰로토프, 흐루쇼프를 차례로 보좌한 트로야놉스키는 소련 외교의 세 시대를 내부에서 목격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회고록 『세월과 거리를 넘어』(Через годы и расстояния, 1997)는 이 경험을 직접 기록한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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