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카츠

Otto Katz

『갈색책』을 실무로 만들고 슬란스키 재판에서 처형된 뮌첸베르크 진영의 공산주의 언론인

보헤미아 남부의 독일어를 쓰는 집안에서 태어나 1922년 독일 공산당에 들어갔다. 빌리 뮌첸베르크의 선전 조직에서 일하며 1933년 파리에서 『갈색책』을 실무로 만들었고, 판데르루버를 동성애자로 그린 장의 자료를 네덜란드에서 모았다. 스페인 내전기에는 앙드레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에스파냐 통신을 이끌었다. 1946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와 《루데 프라보》와 외무부에서 일하다 1952년 슬란스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1968년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앙드레 시몬

주요 활동과 소속

베를린에서 파리, 프라하까지

보헤미아 남부 이스테브니체의 독일어를 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921년 가을 베를린으로 가서 미술 비평을 썼고 1922년 독일 공산당에 들어갔다. 1927년 에르빈 피스카토어 극장의 행정 감독이 되었고, 극장이 문을 닫은 1929년 빌리 뮌첸베르크의 출판·선전 조직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30년 말부터 모스크바의 영화사 메즈라브폼에서 일하며 국제 레닌 학교를 다녔다. 1933년 뮌첸베르크가 그를 파리로 보내 카르푸르 출판사의 『갈색책』 제작과 히틀러 파시즘 희생자 세계위원회 서기를 맡겼다. 판데르루버를 동성애자로 그린 장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자료를 모았는데, 그해 암스테르담에서 나온 『붉은 책』은 그가 문서 인용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할리우드 반나치 동맹을 세웠고, 스페인 내전 때는 앙드레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에스파냐 통신을 이끌었다. 1939년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뉴욕을 거쳐 멕시코로 갔다. 1946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와 《루데 프라보》 외신 편집자가 되었고, 1948년 2월 공산당 집권 뒤 외무부 언론국장을 맡았다. 1952년 6월 체포되어 고문 끝에 혐의를 모두 자백했고, 11월 슬란스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2월 3일 프라하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1968년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