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혼 총대주교

Тихон

혁명기의 교회를 이끈 총대주교

1922년 교회 귀중품 논쟁에서 그는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자발적 기부와 성물의 강제 압수를 구분했다.

티혼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직자이자 1917년 복원된 총대주교직의 첫 보유자로, 혁명 뒤 교회와 새 국가의 충돌을 대표한 인물이다. 그는 1921~1922년 기근 구호를 호소했지만, 1922년 2월 법령 뒤 성물의 일괄 인도가 교회법을 침해한다고 보아 자발적 기부와 강제 압수를 구분했다. 이 입장은 교회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방어였지만, 성직자 탄압과 교회 재산 압수로 이어지는 대립을 막지는 못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기근 구호와 1922년 교회 귀중품 압수

1921년 기근이 심해지자 티혼은 기근 구호위원회를 조직하고 러시아 정교도와 다른 민족들에게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교구에 성별되지 않았고 예배에 쓰이지 않는 귀중품을 기부하라고 권하면서, 성물과 예배에 사용되는 축성된 기물을 압수하는 당국의 조치는 비판했다. 1922년 2월 23일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는 해외 식량 구입을 위한 교회 귀중품 인도를 명령했고, 티혼은 이에 저항했다. 일부 성직자는 명령에 따랐지만, 교회와 국가의 충돌은 압수와 성직자 재판·처형으로 이어졌다. 티혼은 귀중품 인도에 저항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1922년 5월부터 1923년 6월까지 모스크바 돈스코이 수도원에서 엄격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의 구호 호소와 선별적 기부 권유는 기근 구제와 교회 예배의 자율성을 함께 지키려는 대응이었지만, 교회 재산 압수를 둘러싼 대립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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